싸바이디, 라오스2014. 9. 26. 15:58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우기를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첫날부터 이렇게 비가 내리다니. 절망스러웠다. 그래도 한국의 장마처럼 온종일 내리지는 않는다고 하니 어서 개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창문으로 빼꼼히 바라본 라오스의 아침은 저녁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른 시간이지만 상점은 모두 문을 열었고, 거리를 달리는 수많은 오토바이와 자전거도 분주했다. 야간노동과 밤문화에 익숙해져 잊고 있었던 아침이랄까. 어서 그 풍경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짐을 꾸려 밖으로 나섰다. 아이들은 우비를 챙겨 입었고 아내와 나는 우산 하나를 받쳐 들었다.



 


우리가 묵은 숙소인 ‘도우앙찬 플라자 호텔(Douangchanplaza Hotel)’은 이른바 ‘여행자 거리’라고 불리는 중심가와 다소 떨어져 있다. 걸어서 30여 분 정도. 도시 구경도 할 겸 쉬엄쉬엄 걸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숙소에서 나오자 곳곳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뚝뚝’이 물려와 “헤이, 뚝뚝?”이라며 호객 행위를 벌인다. 초행길이 아니니 알아서 잘 갈 수 있다는 듯 우쭐하며 “노 땡규”라고 대답했다. 지도를 펼쳐 놓고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호기로운 개척자 코스프레를 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문제는 길이다. 아니 캐리어다. 각자 둘러맨 배낭 4개 만으로는 모든 짐을 넣을 수 없어 여행용 캐리어 가방을 하나 가져왔는데, 울퉁불퉁하고 여기저기 물이 고인 길이라 도무지 쉽게 끌고 갈 수 없다. 게다가 아이들은 어찌나 꾸물꾸물하던지. 무거운 캐리어를 주체하지 못한 채 비를 홀딱 맞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호기롭기는커녕 우스꽝스러울 게 분명했다. 아내도 같은 마음이었던지 그냥 ‘뚝뚝’을 타자고 했다. 


결국 ‘뚝뚝’을 잡아타고 ‘여행자 거리’로 이동했다. 타고 보니 생각보다 먼 거리였고, 걸어왔으면 참 처량했겠구나 싶었다. 현명한 결정을 내려 다행이라 위안하며 운전사에게 물었다.


“땡큐. 하우 머치?”

“피프티 싸우전드 낍”

“피프틴?”

“노, 피프티”


5만 낍이라니. 순간 우리 돈 5만 원이 연상되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침착해 하며 머릿속 계산기를 돌리는데, ‘5만을 8로 나누면, 8*6에 48이고, 2가 남으니….’ 으악, 내가 이리도 수에 약했단 말인가. 바가지를 덤터기로 쓰는 것이 확실한 것 같은데 대화는커녕 계산도 안 되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순순히 5만 낍을 내고 돌아서니 앞으로 돈 쓸 일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라오스 화폐 단위는 낍(kip)이다. 대략 8천낍이 1달러정도, 원화로 치면 천원꼴이다. 화폐 가치가 너무 낮아 자칫 큰 돈을 쓰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최소 화폐 단위는 천낍이고(오백낍짜리도 있다고 하는데 못봤다.) 오만낍까지 유통된다. 특이하게 동전은 없다. 웬만한 호텔이나 식당에서는 달러나 태국 돈 밧(THB)도 받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폰트레블(www.laokim.com)’. 라오스 현지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다. 한국의 사회적기업인 ‘착한여행(www.goodtravel.kr)’과 연계해 현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출발 시간은 2시, 가격은 1인당 5만낍이다. 방비엥까지 버스비가 5만낍인데, 시내에서 10분도 채 못 탄 뚝뚝이 5만낍이라니! 다시 한 번 분통이 터진다.


방비엥은 카약이나 짚라인, 튜빙과 같은 액티비티가 유명한 곳이다. 문제는 8살 동욱이와 5살 동호가 아직 어려서 이런 체험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느냐이다. 그래서 우리 애들도 그런 액티비티를 할 수 있을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짚라인이나 튜빙은 힘들 것 같고, 용감한 어린이라면 카약 정도는 탈 수 있을 거라고 답했다. 그러자 동호가 엄마에게  다가가 뒷엣말로 조용이 속삭인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동호가 좋다.


“나, 겁 많은데.”


내친김에 오늘밤 숙소까지 예약하고 맞은편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저렴하고 친절해서 현지인에게 인기가 많다고 여행책에 소개된 식당이었는데, 친절은 잘 모르겠고 저렴은 하더라. Sticky Rice 5천낍, Lao Traditionnal Noodle Soup 2만낍, Fried Meat Ball 만낍, 모두 3만5천낍에 점심을 해결했다. 





근처 커피집에서 차도 한 잔 마시고 다시 폰트레블로 와서 방비엥으로 가는 미니버스에 올랐다.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는 VIP버스(대형버스)와 미니버스(15인승), 두 종류가 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VIP버스를 탈 수도 있고 미니버스를 탈 수도 있다고 한다.


비가 오고 멈추길 몇 차례, 수많은 마을을 지나고 얼마나 달렸을까, 차가 멈춘다. 휴게소에 도착한 것이다. 휴게소라고 해봐야 길가에 있는 작은 가게 하나가 전부다. 멀미약을 먹고 꾸벅꾸벅 졸다 깬 아이들도 일어나 과자 하나씩을 집어 들었다. 재미있는 건, 화장실이 유료라는 점. 1인당 천낍을 내야 용변을 볼 수 있다.










다시 한참을 달려 5시 30분, 드디어 방비엥에 도착했다. 방비엥은 비엔티안에 비하면 훨씬 작은 도시다. 아니 마을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겠다. 거리상으로는 154km에 불과하지만(대략 서울-대전 거리) 도로 사정도 안 좋고, 무엇보다 애써 빨리 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3시간 반이 걸렸다. 소 떼가 지나가면 비켜줘야 했고, 사고난 차가 있으면 또 멈춰서 기다려야 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걸어가는데 한국인 식당이 눈에 띈다. 요새 글을 읽기 시작한 동욱이가 제일 먼저 반겼다. 자연스럽게 저녁은 한식으로 먹기로 하고 서둘러 숙소로 발길을 재촉했다.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온 아이들이 급격하게 지치기 시작했다.


불과 이틀 만에 먹는 한식은 꽤 반가웠다. 단, 너무 비싸다는 게 함정. 된장찌개와 두부김치, 계란말이를 먹고 거금 10만4천낍을 냈다. 점심에 비하면 무려 3개배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어젯밤의 염원이었던 맥주를 샀다. 라오스를 대표하는 라오 맥주(Beer Lao). 체코 맥주 기술로 만들어졌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한다. 술을 좋아하지 않으니 자세한 맛은 잘 모르겠지만, 무덥고 습한 하루를 보내고 마시는 라오 맥주 한 병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고 행복했다. 이제 방비엥까지 왔으니, 당분간 이동은 없다. 이곳에서 며칠 묵으며 마음껏 놀자. 






<오늘의 결산>

항목 

 금액

뚝뚝

 50,000낍 

점심

 35,000낍 

커피숍

 20,000*2(커피)+20,000*2(오렌지쥬스)=80,000낍

버스(방비엥)

 50,000*4=200,000낍 

휴게소

 1,000*4(화장실)+10,000*2(과자)+6,000(음료수)=30,000낍

저녁

 104,000낍 

간식

 20,000*2(맥주)+6,000(음료수)=46,000낍 

숙소

 35$(280,000낍)

합계

 825,000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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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바이디, 라오스2014. 9. 25. 16:51
온 집안이 난장판이다. 어젯밤까지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여행 짐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아내와 두 아들 녀석들도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실은 내 마음이 더 난장판이다. 출발 하루 전날인 어젯밤,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충만한 밤을 보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호루라기 하나가 우리 여행을 이렇게 망칠 줄은 정말 몰랐다.

 

며칠 전부터 동호가 호루라기를 사달라고 했다. 그래서 하나를 사 줬다. 빨간색이 예쁜 호루라기였다. 동호도 마음에 드는지 연신 불어대며 좋아했다. 그런데 문제는 저녁에 부모님을 뵙고 돌아오던 길에 벌어졌다. 동호가 호루라기를 두고 왔다며 다시 돌아가자고 울며불며 고집을 피웠다. 내가 마지못해 하나 더 사주겠다고 하자, 온종일 신경이 날카롭던 아내가 대뜸 자기 물건 못 챙겨서 벌어진 일이니 절대 사줄 수 없다고 응수했다. 아니, 다섯 살짜리 아이가 얼마나 자기 물건을 잘 챙길 수 있다고 그러는지, 값나가는 물건도 아니고 ‘꼴랑’ 오백원짜리 호루라기가 아닌가. 나는 어이가 없어 집으로 돌아오는 즉시 여행이고 뭐고 꼴도 보기 싫어 자리에 누워 버렸다.

 

어젯밤 일을 떠올리며 이러다간 필시 여행 가서도 '주구장창' 싸우고만 돌아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기다 말고 습관처럼 페이스북을 들여다본다. 아내가 지난 새벽 2시에 글을 남겼다. 미안한 건 또 내 몫이다.

 

“12일, 결코 짧지 않은 여행을 앞두고 도진 몹쓸 불안증. 잠자면 큰일 날 것처럼…. 출근해서 출국 전까지 해야 할 일들을 분초를 가르며 줄 세우고, 내가 있으나 마나 해결되지 않을 업무들조차 걱정하고 염려하다 이쯤 되면 병은 아닐까 싶어 또 걱정을 업는다. 숨이 가빠졌다 심장이 벌컥거리다 유난히 내 불안과 곤두선 신경 덕에 오늘 하루 찬물 한 바가지씩 쏟긴 남편과 아이들. 예민함은 왜 늘 나를 바라보기보다 외부로 향할 때가 더 많은지. 별 준비 없이 가는 라오스, 서로 많이 사랑하고 아끼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간이면 좋겠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나머지 짐을 다 꾸린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내와 두 아들 녀석을 흔들어 깨웠다. 

 

“자기야, 얘들아, 어서 일어나. 오늘 라오스 가는 날이야!”

 

라오스로 가는 항공편은 생각보다 많다. 그중 직항은 라오항공과 진에어 두 개. 라오항공은 일주일에 네 번(화, 목, 금, 토요일 10시 40분) 인천공항을 출발하고, 진에어는 일주일에 두 번(월, 금요일 19시 20분) 출발한다. 우리는 요금이 가장 저렴한 쪽으로 알아봤고, 9월 1일 월요일에 출발해서 9월 12일 금요일에 돌아오는 진에어를 선택했다. 무려 12일간의 여행, 38년 만에 가장 빠르다는 추석 연휴에 미뤄둔 여름휴가를 한꺼번에 몰아 쓴 덕에 가능했다.

 

온 가족이 배낭 하나씩 둘러메고 집을 나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4시. 느긋하게 탑승수속 받고 출국심사대를 벗어나자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면세점이 펼쳐진다. 여행을 소비로 시작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미리 사둔 아내 선글라스와 카메라 렌즈 하나를 집어 들었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치히로 엄마, 아빠처럼 곧 돼지가 되어버리진 않을지 모르겠다.

 

서둘러 127번 탑승게이트를 찾아 이동, 라오스 비엔티안행 LJ015편 비행기에 탑승했다. 저가항공이라 그런지 탑승게이트도 멀고 비행기 좌석도 좁다. 바로 코앞이 앞사람 머리다. 이렇게 옴짝달싹도 못한 채 5시간 20분을 날아가야 한다니. 그래도 뭐, 싼값에 항공권을 끊을 수 있어 좋다. 라오스는 9월까지 우기가 이어져 지금은 여행 비수기다. 항공권도 성수기보다 조금 싼 편인데, 대략 40만 원대. 그런데 우리는 운 좋게도 331,900원에 끊었다. 몇 날 며칠 눈팅만 하다 8월 20일 예약을 하려고 홈페이지를 열었더니 갑자기 10만 원이나 뚝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수요일에 항공권이 뚝 떨어진다더니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다.





7시 20분.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한다. 서서히 움직이던 비행기가 갑자기 굉음을 내며 속도를 높인다. 비행기가 이륙을 결심한 것이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날개 위, 아래의 압력 차이로 생기는 약력(揚力) 때문이다. 이를 위해 비행기는 일정 정도의 속도에 도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속도를 넘긴 비행기는 설사 비행기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일단 날아야 보다한다. 비상은 일정한 도움닫기와 단 한 번의 결심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비행기가 뜨자 심장이 쫄깃해진다. 일상을 휘감고 있던 중력에서 벗어나는 일탈의 순간 느낄 수 있는 쾌감이다. 하지만 쾌감도 잠시, 좁은 항공기 안에서 5시간 이상 앉아 있어야 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금세 곯아떨어졌다. 나 역시 얼마나 졸았을까. 한참이 지나 기내 방송에 잠이 깼다. 베트남 상공을 날고 있다며 20분 후 라오스 왓따이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란다. 좁은 창문을 통해 저 멀리 수없이 작은 불빛들이 반짝인다.

 

현지시각 10시 40분(라오스와의 시차는 두 시간), 비행기는 무사히 왓따이 공항에 도착했다. 후텁지근한 더위와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우리를 제일 먼저 반긴다. 간단한 입국심사(라오스는 비자 없이 15일간 체류할 수 있다.)를 마치고 나오자 미리 예약해둔 숙소에서 나온 분이 우리를 픽업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밤늦게 도착하는 탓에 첫날 숙소만 미리 예약해 둔 것이다. 




비엔티안의 밤거리는 조용했다.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픽업 차량으로 나온 현대차를 타고 공항에서 가장 큰 삼성 광고판을 보며 여기가 정말 라오스가 맞는 것인지 잠깐 생각했다. 두 시간을 거슬러 날아온 이곳은 과연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지. 괜스레 쫄린다. 생전 처음 만나는 라오스인이 우리를 제대로 데려다 줄 것인지도 걱정이다. 조심스럽게 아는 영어를 총동원해 물었다. 그는 수다스럽지 않았고 우리의 대화는 짧게 끝났다. 다행이다. 대화는 짧았지만, 안도감은 커졌다.

 

“하우 롱 더즈 잇 테이크 투 호텔?”

“어바웃 텐 미닛츠. 웨어 아 유 프럼?”

“코리아”

 

10분 남짓 달려 도착한 숙소는 홈페이지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속았구나 싶었다. 짐 풀고 씻고 애들 재우고 나니 맥주가 간절하다. 그래도 나갈 순 없다. 편의점 따위가 있어 보이지도 않고, 무엇보다 무섭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잠자리에 든다. 불을 끄니 낯선 공기가 나를 잠식할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여러모로 여긴 라오스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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