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우기를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첫날부터 이렇게 비가 내리다니. 절망스러웠다. 그래도 한국의 장마처럼 온종일 내리지는 않는다고 하니 어서 개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창문으로 빼꼼히 바라본 라오스의 아침은 저녁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른 시간이지만 상점은 모두 문을 열었고, 거리를 달리는 수많은 오토바이와 자전거도 분주했다. 야간노동과 밤문화에 익숙해져 잊고 있었던 아침이랄까. 어서 그 풍경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짐을 꾸려 밖으로 나섰다. 아이들은 우비를 챙겨 입었고 아내와 나는 우산 하나를 받쳐 들었다.
우리가 묵은 숙소인 ‘도우앙찬 플라자 호텔(Douangchanplaza Hotel)’은 이른바 ‘여행자 거리’라고 불리는 중심가와 다소 떨어져 있다. 걸어서 30여 분 정도. 도시 구경도 할 겸 쉬엄쉬엄 걸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숙소에서 나오자 곳곳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뚝뚝’이 물려와 “헤이, 뚝뚝?”이라며 호객 행위를 벌인다. 초행길이 아니니 알아서 잘 갈 수 있다는 듯 우쭐하며 “노 땡규”라고 대답했다. 지도를 펼쳐 놓고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호기로운 개척자 코스프레를 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문제는 길이다. 아니 캐리어다. 각자 둘러맨 배낭 4개 만으로는 모든 짐을 넣을 수 없어 여행용 캐리어 가방을 하나 가져왔는데, 울퉁불퉁하고 여기저기 물이 고인 길이라 도무지 쉽게 끌고 갈 수 없다. 게다가 아이들은 어찌나 꾸물꾸물하던지. 무거운 캐리어를 주체하지 못한 채 비를 홀딱 맞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호기롭기는커녕 우스꽝스러울 게 분명했다. 아내도 같은 마음이었던지 그냥 ‘뚝뚝’을 타자고 했다.
결국 ‘뚝뚝’을 잡아타고 ‘여행자 거리’로 이동했다. 타고 보니 생각보다 먼 거리였고, 걸어왔으면 참 처량했겠구나 싶었다. 현명한 결정을 내려 다행이라 위안하며 운전사에게 물었다.
“땡큐. 하우 머치?”
“피프티 싸우전드 낍”
“피프틴?”
“노, 피프티”
5만 낍이라니. 순간 우리 돈 5만 원이 연상되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침착해 하며 머릿속 계산기를 돌리는데, ‘5만을 8로 나누면, 8*6에 48이고, 2가 남으니….’ 으악, 내가 이리도 수에 약했단 말인가. 바가지를 덤터기로 쓰는 것이 확실한 것 같은데 대화는커녕 계산도 안 되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순순히 5만 낍을 내고 돌아서니 앞으로 돈 쓸 일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라오스 화폐 단위는 낍(kip)이다. 대략 8천낍이 1달러정도, 원화로 치면 천원꼴이다. 화폐 가치가 너무 낮아 자칫 큰 돈을 쓰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최소 화폐 단위는 천낍이고(오백낍짜리도 있다고 하는데 못봤다.) 오만낍까지 유통된다. 특이하게 동전은 없다. 웬만한 호텔이나 식당에서는 달러나 태국 돈 밧(THB)도 받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폰트레블(www.laokim.com)’. 라오스 현지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다. 한국의 사회적기업인 ‘착한여행(www.goodtravel.kr)’과 연계해 현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출발 시간은 2시, 가격은 1인당 5만낍이다. 방비엥까지 버스비가 5만낍인데, 시내에서 10분도 채 못 탄 뚝뚝이 5만낍이라니! 다시 한 번 분통이 터진다.
방비엥은 카약이나 짚라인, 튜빙과 같은 액티비티가 유명한 곳이다. 문제는 8살 동욱이와 5살 동호가 아직 어려서 이런 체험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느냐이다. 그래서 우리 애들도 그런 액티비티를 할 수 있을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짚라인이나 튜빙은 힘들 것 같고, 용감한 어린이라면 카약 정도는 탈 수 있을 거라고 답했다. 그러자 동호가 엄마에게 다가가 뒷엣말로 조용이 속삭인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동호가 좋다.
“나, 겁 많은데.”
내친김에 오늘밤 숙소까지 예약하고 맞은편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저렴하고 친절해서 현지인에게 인기가 많다고 여행책에 소개된 식당이었는데, 친절은 잘 모르겠고 저렴은 하더라. Sticky Rice 5천낍, Lao Traditionnal Noodle Soup 2만낍, Fried Meat Ball 만낍, 모두 3만5천낍에 점심을 해결했다.
근처 커피집에서 차도 한 잔 마시고 다시 폰트레블로 와서 방비엥으로 가는 미니버스에 올랐다.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는 VIP버스(대형버스)와 미니버스(15인승), 두 종류가 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VIP버스를 탈 수도 있고 미니버스를 탈 수도 있다고 한다.
비가 오고 멈추길 몇 차례, 수많은 마을을 지나고 얼마나 달렸을까, 차가 멈춘다. 휴게소에 도착한 것이다. 휴게소라고 해봐야 길가에 있는 작은 가게 하나가 전부다. 멀미약을 먹고 꾸벅꾸벅 졸다 깬 아이들도 일어나 과자 하나씩을 집어 들었다. 재미있는 건, 화장실이 유료라는 점. 1인당 천낍을 내야 용변을 볼 수 있다.
다시 한참을 달려 5시 30분, 드디어 방비엥에 도착했다. 방비엥은 비엔티안에 비하면 훨씬 작은 도시다. 아니 마을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겠다. 거리상으로는 154km에 불과하지만(대략 서울-대전 거리) 도로 사정도 안 좋고, 무엇보다 애써 빨리 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3시간 반이 걸렸다. 소 떼가 지나가면 비켜줘야 했고, 사고난 차가 있으면 또 멈춰서 기다려야 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걸어가는데 한국인 식당이 눈에 띈다. 요새 글을 읽기 시작한 동욱이가 제일 먼저 반겼다. 자연스럽게 저녁은 한식으로 먹기로 하고 서둘러 숙소로 발길을 재촉했다.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온 아이들이 급격하게 지치기 시작했다.
불과 이틀 만에 먹는 한식은 꽤 반가웠다. 단, 너무 비싸다는 게 함정. 된장찌개와 두부김치, 계란말이를 먹고 거금 10만4천낍을 냈다. 점심에 비하면 무려 3개배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어젯밤의 염원이었던 맥주를 샀다. 라오스를 대표하는 라오 맥주(Beer Lao). 체코 맥주 기술로 만들어졌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한다. 술을 좋아하지 않으니 자세한 맛은 잘 모르겠지만, 무덥고 습한 하루를 보내고 마시는 라오 맥주 한 병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고 행복했다. 이제 방비엥까지 왔으니, 당분간 이동은 없다. 이곳에서 며칠 묵으며 마음껏 놀자.
<오늘의 결산>
항목 |
금액 |
뚝뚝 |
50,000낍 |
점심 |
35,000낍 |
커피숍 |
20,000*2(커피)+20,000*2(오렌지쥬스)=80,000낍 |
버스(방비엥) |
50,000*4=200,000낍 |
휴게소 |
1,000*4(화장실)+10,000*2(과자)+6,000(음료수)=30,000낍 |
저녁 |
104,000낍 |
간식 |
20,000*2(맥주)+6,000(음료수)=46,000낍 |
숙소 |
35$(280,000낍) |
합계 |
825,000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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