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유랑가족2013. 4. 12. 16:56

[5월 21일] '물 우이 삼 년 물 아래 삼 년' (우도)


동욱이가 이불에 오줌을 쌌다. 위아래 옷이며 깔고 자는 요까지 흠뻑 젖었다. 원래 쉬를 잘 가렸는데 많이 피곤했나 보다. 녀석, 얼마나 민망할까. 어렸을 때 이불에 오줌 싸고 새벽에 깨서 "엄마, 나 오줌 쌌어"라는 말이 입가에서만 맴돌았던 기억이 난다. 후다닥 옷과 이불을 빨아서 널었는데, 다행히 아침부터 볕이 좋아 금방 마른다.


오늘은 돈내코에서 철수하는 날이다. 아침 먹고 오전 내내 짐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동호가 아빠에게 안 떨어진다. 뭐가 성에 안 찼는지, 하필 오늘 같은 날 계속 칭얼대고 운다. 그러다 짐을 다 싸고 차가 출발하자 바로 곯아떨어진다. 가엽다.


아이의 욕구 불만은 대체로 어른 탓이다. 엄마, 아빠가 모두 짐을 싸느라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는데, 오죽 심심하고 관심을 받고 싶었겠나.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징징거리는지 화딱지가 나면서도 어쩔 수 없다. 아이의 처지에 먼저 공감해야 아이도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으니까. 엄마, 아빠가 믿고 기다려주는 만큼, 딱 그만큼 아이들은 자란다.


오늘은 우도로 간다. 성산항에서 배 타고 15분. 그 짧은 순간에도 조류가 강해 배가 휘청휘청한다. 제주도의 창세여신 설문대할망의 거센 오줌발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우도는 설문대할망의 오줌발로 땅이 떨어져 나가 생긴 섬이다. 


우도 앞바다는 짙고 밀도가 높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의 탄성이 터진다. 돌고래다! 돌고래 무리가 물 위로 뛰어오른 것이다. 우와! 대단하다. 최근 돌고래 무리가 자주 출연한다더니 이렇게 직접 보게 될 줄이야. 하지만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다. 돌고래가 나타난다는 것은 제주도 바다가 점점 뜨거워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해양생태계의 혼란은 물론, 해수면 상승 등 온갖 기후변화의 악영향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제주도에서 돌고래를 보게 되는 행운을 누리는 것보다 제주도 난대성 토종 어종인 자리돔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


우도에 도착해 제일 먼저 서빈백사를 찾았다. 10여 년 전 기억을 더듬으며 하얀 모래밭의 눈부신 바다를 떠올렸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여느 관광지나 다름없는 북적대는 해변이다. 관광객을 실은 셔틀버스도 연신 왔다갔다한다. 그리고 "우도에서 골프카트 및 전기자동차를 임대 운영하는 것은 불법입니다"라는 현수막까지.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지 실망도 크다. 


우도에서 텐트를 칠 수 있는 곳은 서빈백사, 하고수동해변, 비양도, 이렇게 세 곳. 어디가 좋을지 일단 둘러보기로 하고 섬 한 바퀴를 돌았다. 서빈백사는 사람이 너무 많고, 하고수동해변은 아이들 놀기는 좋지만 바람이 너무 세다. 비양도 역시 경치는 좋지만, 바람이 장난 아니다. 어쩌지.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텐트 치는 건 포기하고 하고수동해변 근처에 민박을 잡았다.



우도에서 본 제주도. 제주도가 오름의 섬이란 걸 알 수 있다


하고수동해변에서 한 컷



비양도에서도 한 컷. 엄마랑 동호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


민박은 할머니 혼자 사시는 낡고 허름한 바닷가 집이다. 작은 마루를 사이에 두고 할머니 방과 우리 방이 있다. 애들은 할머니 방으로 건너가 논다. 텔레비전이 있어서 그런가. 아무튼, 애들이 할머니와 거리낌 없이 지내니 좋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어렸을 때 할머니를 싫어했던 것 같다. 뭉뚱그려진 기억이라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한가지 기억은 또렷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며 고개를 떨구시던 아버지 모습이다.


고무 대야 두 개면 충분해 ^^


민박집 할머니는 여기가 고향이라고 하셨다. 젊어서는 객지로 나가 결혼도 하셨지만, 결국 혼자 몸으로 다시 이곳으로 오셨단다. 자식들이 제주시와 부산에 살고 있는데, 부담되기 싫어 여기서 혼자 사신다고 했다.


할머니 집에는 잠녀옷이 걸려 있다. (해녀라는 말은 일제강점기에 건너 온 말이고 애초에는 잠녀, 잠수라고 불렀다.) 그래서 요즘도 물질을 하시냐고 묻자, 요새 젊은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나이는 다 한다고 하신다. 할머니에게 물질은 선택 가능한 직업이 아니라 그냥 삶의 일부라고. '물 우이 삼 년 물 아래 삼 년'이라는 제주도 속담은 거저 생긴 게 아니었다.


잠녀옷은 두꺼운 고무 옷이다. 그래서 체온을 유지하고 피부를 보호할 수 있다. 또 부력이 좋아 위급한 상황에서 쉽게 물 위로 떠오를 수 있다. 처음에는 그냥 알몸으로 물질했는데, 그것이 금지되면서 무명 저고리에 흰 수건으로, 그리고 지금의 검은 고무 옷으로 변해 왔다. 그럼에도, 저 두꺼운 고무 옷을 뒤집어쓰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춥고 무섭고 외로울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칠성판을 등에 지고 혼백상자를 머리에 이고' 한다는 물질. 제주도 여성들에게 바다는 생존의 터전이자 죽음의 공간이다. 오늘 밤 바닷소리가 유난히 크다.


우도 밤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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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유랑가족2013. 4. 3. 23:50

[520일] 나에게 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 (쇠소깍, 서귀포 기적의도서관)


유난히 일찍 일어난 아이들이 눈뜨자마자 텐트 안에서 뒹굴며 논다. 부스스 일어나 시계를 보니 6시 20분. 온종일 쏘다니며 노느라 초저녁이면 곯아떨어지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당연하겠지. 하지만 엄마, 아빠는 죽을 맛이다. 다음날 일정 짜랴, 맥주도 한잔하랴, 밤늦게까지 할 일이 많다. 그래서 아침이면 깨우는 애들과 더 자려는 엄마, 아빠 간에 한바탕 법석이 인다. 오늘도 한참을 뭉그적대다 겨우 일어나 애들 손에 이끌려 아침 댓바람부터 놀이터로 향한다. 


오늘은 미뤄둔 쇠소깍 테우체험을 하는 날이다. 그저께는 배 시간을 놓쳐 못 탔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오후 2시 배를 예약했다. 그러고 남는 시간엔 근처 큰엉해안경승지로 가서 도시락을 먹었다. 바다를 집어 삼킬 듯이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언덕이란 뜻의 큰엉해안경승지는 남원포구에서 쇠소깍까지 이어지는 올래5코스에 있다.


다시 쇠소깍으로. 쇠소깍은 한라산 정상에서 발원해 돈내코를 거쳐 바다로 흐르는 효돈천의 하구를 가리킨다. 이곳에서 효돈천은 용천수와 바닷물을 만나 깊은 웅덩이를 형성한다. 쇠소깍의 '쇠'는 근처 효돈마을을, '소'는 움폭한 물웅덩이를 '깍'은 끝을 뜻한다. 효돈마을의 옛이름이 바로 소가 누워있단 뜻의 '쇠둔'이다.


쇠소깍



'떼배', '테위' 등으로 불리는 테우는 여러 개의 통나무를 엮어서 만든 뗏목배다. 현무암으로 형성되어 지반이 험한 제주도 연안에서 부력이 좋은 구상나무로 만든 테우는 미역이나 해초 등을 걷어 올리거나 자리돔 등을 그물로 잡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8~90년대까지만 해도 해안가 마을 집집이 테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관광 체험으로만 남아 있다.


테우는 무동력이다. 오직 물속에 드리운 밧줄을 잡아당기는 힘만으로 배가 이동한다. 태우와 밧줄 사이의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만들어 낸 힘과 움직이는 배의 '관성의 법칙'이 만들어낸 힘은 고작해야 물살의 마찰력을 겨우 이겨낼 정도다.



동호는 뚱하고



둥욱이는 좀 무서워하고



그래서 테우의 이동은 사실상 표류에 가깝다. 마치 바람에 실려 떠내려가듯 미끄러진다. 비록 속력은 느리지만, 편안하고 여유롭다. 마치 차를 타고 가면서는 볼 수 없었던 작은 골목길의 표정을 만나듯, 숲과 바다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러다 누군가 "앗! 물고기다."라고 외치자, 모두 물속으로 시선을 옮긴다. 은어 떼다. 워낙에 물이 맑아 은어가 많이 살기도 하지만, 가는 듯 마는 듯 흘러가는 테우가 은어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들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속도를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라고 한다. 인간은 속도가 있어 시간으로부터 해방되지만, 이는 결국 마약과 같은 망각과 부정일 뿐이다. 느림이야말로 진정 나에게, 그리고 자연에게 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흔들의자에 앉아 기분좋게



테우체험을 마치고 난 후에는 서귀포시로 돌아가 빨래방을 찾았다. 그동안 간단한 빨래는 야영장이나 목욕탕에서 직접 해왔는데 시간이 오래 지나다 보니 손빨래만으로는 한계가 컸다.


빨래방에서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에는 서귀포 기적의도서관에 들렀다. 제주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이색적인 도서관을 볼 수 있다. 제주도 인구는 약 55만 명, 공공도서관은 22개다. 여기에 민간 도서관이 10여 개 더 있다. 도서관 1관 당 인구는 76,926명으로 전국 최소다. 반면 인천은 158,394명으로 꼴찌. 서울은 130,078명이다. 제주도는 여러모로 축복받은 곳이 틀림없다. 그러니 이리 좋을 수밖에. 아! 살고싶다, 제주도!



덕분에 아빠는 푹 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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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유랑가족2012. 11. 21. 11:08

[5월 10일] 방귀대장 조동욱과 <방귀 며느리>


아이들의 변신은 무죄다. 안경 하나 걸치면 아빠가 되고, 망토 하나 둘러쓰면 슈퍼맨이 된다. 오늘도 동호가 아침 일찍부터 엄마 신발을 질질 끌고 다니면서 “엄마다. 엄마다.”라며 역할 놀이에 흠뻑 빠졌다.

 

대개 세 살쯤 되면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역할을 인식하면서 자신에게 친숙한 사람부터 흉내 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언어능력이 점점 발달하면서 상대방과 협의해 더 복잡한 줄거리의 가상 상황을 만들어 역할 놀이를 즐긴다. 아이들은 이를 통해 자기중심적인 사고 깨고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며 사회적인 존재로 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물을 다른 사물로 표상하고 상징하며 창조적인 상상력을 키워간다.

 

그런데 문제는 아빠의 호응이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의 놀이에 흠뻑 빠지기엔 아빠는 늘 할 일이 많고 딴생각도 많다. 그리고 피곤하기까지. 그래서 아빠는 건성으로 대충 하고, 아이들의 욕구는 좌절되기가 일쑤다. 미안하고 안타깝다. 지금이야 못 놀아서 안달이지만, 다 크고 나면 언제 또 이렇게 살갑게 놀 수 있겠나 싶어 짠하다. 그러니 힘내서 놀 수밖에. “엄마, 맘마 주세요.”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아기처럼 동호 꽁무니를 열심히 쫓아다녀 본다.

 

점심은 애월읍에 있는 보리밥 집에서 해결했다. 특별한 메뉴가 있는 맛집은 아니지만, 집에서 먹는 밥 같아 좋았다. 동욱이는 보리밥을 한 공기 다 비우고 온종일 방귀를 뽕뽕 터트렸다. 방귀대장 조동욱이다.

 

제주도는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지역이라 물을 가둬두지 못해 논농사가 사실상 불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집에 큰일이 있을 때에만 쌀밥을 지어먹었다고 한다. 그만큼 흰 쌀밥이 귀했는데, 이름도 ‘고은 밥’이란 뜻으로 ‘곤밥’이라 불렀다. 그 유명한 <방귀 며느리>가 제주 지역의 설화인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애월읍에는 유명한 보리빵집도 있다. 시골 읍내의 작고 허름한 가게인데, 성수기에는 오전 한나절에 빵이 다 팔린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을지, 기대가 컸다. 그런데 애걔, 옛날 엄마가 해주시던 술빵이다. 어릴 적엔 정말 맛이 없었는데. 근데 신기한 게 어른이 돼서 지금 먹어보니 참 맛있다. 아무 맛도 없는 빵이 맛있다니, 나도 나이를 먹은 거다.

 

보리밥에 보리빵까지, 장 활동이 활발해진 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애월읍에서 조금 떨어진 귀덕리의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갑자기 신호가 온 것이다. 그래서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동욱이가 큰 소리로 “아빠, 똥 싸고 왔어?”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순간 조용하던 카페의 모든 시선이 엉거주춤해 있는 나에게 쏠렸다. 아, 이런 관심은 좀 …….

 

애월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협재해변과 금능해변을 만날 수 있다. 협재해변이 크고 잘 알려진 데 비해 바로 그 옆에 있는 금능해변은 비교적 아담하고 한적하다. 우리는 금능해변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엄마는 돗자리를 펴자마자 30분만 잔다며 자리에 눕는다. 애들은 모래놀이를 시작했고, 나는 라디오를 들으며 저 멀리 비양도와 바다를 바라본다. 하늘이 흐려 바다도 흐리멍덩하다.

 

 

금능해변에서 바라 본 비양도. 저 깃발은 뭘까.

 

 

성수기가 아니라서 매점이 문을 닫았고 우리는 그 앞에 진을 쳤다.

 

쫓는 조동욱과 도망치는 조동호

 

 

저녁은 한림읍에 있는 중국음식점에 먹으려고 했는데, 가보니 문을 열지 않았다. 낭패다. 피곤하고 배고픈 아이들이 이제 곧 짜증을 부릴 텐데 말이다. 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폭풍 검색에 나섰지만, 여의찮다. 초조한 검색을 얼마나 했을까, 드디어 괜찮아 보이는 식당 하나를 찾았다. 금능포구 안쪽에 있는 작은 횟집인데, 관광객들이 오는 식당이라기보다 동네 아저씨들이 모이는 아지트처럼 느껴졌다. 이런 느낌, 좋다. 물론 음식도 맛있었다. 새콤하고 꼬들꼬들한 물회 맛이 일품이었다. 애들도 깔끔하고 담백한 밑반찬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했다. 이런 게 바로 여행에서 만나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겠지.

 

배불리 먹고 해가 뉘엿이 기운 포구를 거닐었다. 동욱이가 엄마랑 손을 잡고 먼저 저만치 걸어갔다. 그 뒤를 동호가 따랐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혼자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본다. 어라, 이 녀석 봐라. 제법 폼 좀 잡네. 어른이나 애들이나 해 질 녘 바다를 느낄 줄 아는 건 똑같나 보다. 왜 안 그렇겠어. 이렇게 아름다운데. 느낌이 없는 게 이상하지. 동호도 느낄 건 다 느낄 줄 아는 어엿한 녀석인 거다. 고맙다, 동호야. 벌써 이 바다만큼 자라줘서.

 

 

그물 밟지말라고 그렇게 소리쳤거늘 막무가내다.

 

 

동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서귀포자연휴양림으로 돌아오는 길, 애들은 어김없이 곯아떨어졌다. 어두워진 숲길을 헤드라이트 밝히고 가는데, 노루 한 마리가 후다닥 뛰어갔다. 나도 놀랐지만, 노루가 더 놀랐을 거다. 애들이 봤음 신기하다 했을 텐데. 그렇게 아쉬운 하루가 또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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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유랑가족2012. 8. 20. 21:29

[5월 8일] 달이 머무는 바다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그래도 온몸이 쑤신다. 일주일의 긴장과 피곤이 몸에서 빠져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발악했다. 다행히 동욱이는 텔레비전 앞에서 만화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문제는 동호, 아빠가 일어나자마자 안아 달라고 착 달라붙는다. 아, 무거운 놈.

 

얼른 아침밥 해 먹고 바닷가로 나갔다. 월정리(月汀里)는 달이 머무는 바다다. 제주도의 크고 이름난 해수욕장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강렬한 존재는 아니지만, 깊고 아늑하며 고요하다. 에메랄드 빛 바다와 부드러운 모래, 한적한 바람이 한데 모여 눈과 발, 마음을 치유한다.

 

 

 

월정리 바닷가의 화룡점정은 ‘고래가 될 cafe’다. 원래 그 자리에는 '아일랜드 조르바‘라는 카페가 있었는데 이게 옆 동네 평대리로 자리를 옮기고 ’고래가 될 cafe'가 들어섰다.

 

‘고래가 될 cafe'는 바다로 열린 카페다. 낡은 테이블과 의자들은 카페를 뛰쳐나와 작은 도로를 건너 바로 바다 앞에서 멈췄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사진을 찍고 사랑을 나눈다. 아이들은 모래사장에서 맘껏 뛰고 엄마, 아빠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자연 속 키즈카페가 바로 여기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법인가 보다. 동욱이는 그림 그려 달라, 동호는 안아 달라, 득달같이 아빠에게 달려든다. 엄마는 예전 직장에서 전화를 받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퇴직했으면 끝이지 왜 아직 업무 전화로 남편을 고통받게 하는지, 고약한 심보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가 돌아오자 동호는 엄마 품에 안겨 바로 잠이 들었다. 동욱이는 엄마 옆에서 그림을 한두 장 그리더니 이내 모래사장으로 내려가 모래 놀이를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귤꽃소복샤르르라떼’를 한 잔 마신다. 달짝지근한 라떼 한 모금에 온 세상이 평온해진다.

 

 

 

 

 

 

오늘 동욱이 모래놀이 주제는 화산이다. 동욱이는 “딩동딩동~ 화산이 열렸다~”라며 연신 노래를 불러대며 모래를 쌓아 높은 산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펑”하고 터트린다. 그렇게 몇 번 터진 화산은 이내 논과 밭으로 변했다. 자신을 미역농부로 소개한 동욱이는 바닷가에 떠내려 온 해초를 모아 모래사장에 심었다. 미역농부의 얼굴을 보니 올해도 풍년이다.

 

 

 

저녁에는 동네 정육점에서 흑돼지 삼겹살을 사왔다. 제주도에서는 돼지고기를 멜젓(멸치젓)에 찍어 먹는다. 종지에 담아 고기와 함께 석쇠 위에서 보글보글 끓인 멜젓은 느끼한 고기 맛에 감칠맛을 돌게 하며 끝 맛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는 환상의 궁합이다.

 

제주도 토종 흑돼지를 흔히 ‘똥돼지’라고 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농가마다 변소에 돌담을 쌓아 ‘돗통’을 만들고 그 안에서 돼지를 키웠다. 그러다 관광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톳통’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자연순환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똥을 돼지가 먹고, 그 돼지의 똥을 땅이 먹고 또 그 땅에서 자란 곡식을 인간이 다시 먹는 것이다. 더럽고 냄새난다는 이유로 없애버렸지만, 제주도 ‘돗통’만큼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시스템이 또 있을까 싶다. 정작 우리가 더럽고 야만적인 시대로 후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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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유랑가족2012. 6. 26. 14:42

 

관음사야영장 우리 집!

 

[5월 5일] ‘라복새’를 아시나요?


숲의 아침은 새소리에서 비롯한다. 어둠에서 흘러나온 시간은 분명 연속적이지만, 아침이 열리는 순간은 어느 변곡점에 이르러야 발생한다. 새소리는 그 변곡점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였다.

 

시작은 한 마리였다. 작은 새가 지저귀는 짧은 외침이었지만, 강렬하고 청명한 울림은 온 세상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이어진 적막과 두 번째 지저귐. 그러자 신기하게도 반대편에서 또 다른 새가 지저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연주하듯 서로 주고받는다.

 

그러다가 어느새 수십 마리의 합창으로 변한다. 모두가 제각각 다른 소리다. 놀랍다. 동욱이는 그중에서도 특히 ‘라복~ 라복~’, 이렇게 우는 새소리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아빠, 우리 라복새라고 부를까?” 새로운 종의 새가 인류에게 보고되는 순간이다. 그후로도 우리는 종종 독특한 새소리를 들을 때마다 새로운 이름을 지으며 놀곤 했다.

 

관음사야영장은 한라산 관음사코스 입구에 있다. 정문에 들어서면 큰 주차장이 보이고 정면에 관리사무소가 보인다. 관리사무소 왼쪽 조그만 길에서 한라산 등산로가 시작한다. 주차장은 넓은 잔디밭으로 연결되는데, 잔디밭 위쪽이 바로 야영장이다. 우리 텐트는 그보다 더 위쪽인 숲 속에 있다. 관음사야영장은 주차장까지만 차가 들어갈 수 있어 손수레를 이용해 짐을 운반해야 한다. 위쪽 숲 속까지 무거운 짐을 옮기려면 힘이 곱절로 들지만, 한적한 야영을 위해 그렇게 했다. 그럼에도 오늘은 토요일, 야영장이 금세 시끌벅적해진다. 수많은 야영객은 물론이고 교회 야유회까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룬다. 우리는 빨리 아침을 해치우고 야영장을 나섰다.

 

 

관음사야영장 잔디밭에서 손잡고 놀고 있는 동욱이와 동호

 

 

오늘은 삼양검은모래해변을 찾았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래사장이 검은 게 이색적이다. 화산석인 현무암 가루 때문이다. 이곳에선 동호가 예사롭지 않다. 검은 모래사장이 신기한가 보다. 장난감 그릇을 하나 들고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모래 놀이에 빠져든다. 춤추듯 검은 무늬가 펼쳐진 모래사장과 조동호의 왠지 모를 촌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어제도, 그제도 꼭 그 자리에서 놀았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검은모래해변을 걷고 있는 아내와 동호

 

동호, 왜 촌티가 날까?

 

엉거주춤한 동호, 혼자서도 잘 논다

 

오후에는 목욕탕에 갔다. 시설을 잘 갖춘 야영장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시설도 있지만, 여긴 그렇지 않다. 공중화장실 세면대에서 찬물로 매번 애들을 씻겨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에 가기로 했다.

 

사실 동욱이랑 함께 목욕탕에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등도 밀어주고 바나나우유도 먹고, 뭐 이런 시시콜콜한 로망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도 실현되진 못했다. 안경을 차에 두고 가는 바람에 홀딱 벗고도 선글라스를 낀 채 목욕탕을 누벼야 하는 민망한 장면만 연출했다.

 

동욱이는 신기한 듯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무릎에 난 상처도 아물지 않아 뜨거운 탕에 들어가는 게 힘들었을 텐데 아빠 품에 쏙 안겨 잘 버텼다. 뽀글뽀글 올라오는 물거품에도 한참을 재밌어한다.

 

동욱이랑 목욕탕에 있으니 어렸을 때 아버지와 목욕탕에 다니던 기억이 떠올랐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뭉뚱그려진 기억의 단편이지만, 내가 또 언제 아버지랑 목욕탕엘 갈 수 있을까 싶어 마음이 짠해진다. 그렇게 동욱이는 종종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언젠가 아버지가 동욱이를 안고 있었는데, 이 녀석 나를 닮은 게 아니라 할아버지를 닮았구나 싶었다. 그때 비로소 내가 아버지를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를 이해해주시지 못하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경멸한 적도 있었지만, 동욱이는 그런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내가 동욱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듯이 아버지도 내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몰랐을 뿐이겠지. 그리고 이 녀석도 모르겠지. 아, 너무 늙어버린 아버지 생각에 또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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