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바이디, 라오스2015. 1. 27. 22:56

[9월 6일] 메콩강이 흐르는 대로(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6시 30분, 아침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루앙프라방으로 넘어가는 날. 8시 40분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야 한다. 7시, 아침을 먹고 서둘러 짐을 챙겼다. 체크아웃하고 숙소 정문으로 나가니 미니버스가 벌써 대기 중이다.


버스는 한적했다. 좁은 버스를 타고 온종일 이동할 생각에 걱정이 많았는데 널찍하고 편하게 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웬걸, 우리를 태운 버스는 곧장 루앙프라방으로 향하지 않고 이 숙소, 저 숙소 들러 여행객을 계속 태우는 게 아닌가. 결국, 미니버스는 빈자리 하나 없이 꽉 들어찼고 우리는 맨 뒷자리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만선의 기쁨으로 흐믓해지기라도 한 걸까. 운전사는 갑자기 시계가게 앞에서 멈추더니 금박으로 반짝이는 손목시계를 하나 골라 차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시계라니, 무슨 영문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그리고 1시간쯤 갔을까. 이번에는 정비소에서 멈췄다. 차에서 내려 앞바퀴를 살피며 정비소 주인과 한참을 얘기하던 운전사는 급기야 승객들을 모두 내리게 했다. 멀미약을 먹고 잠들었던 아이들을 깨워 내려 보니, 앞바퀴 브레이크 패드를 교환하는 게 아닌가. 과연 이 버스가 루앙프라방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또 어디 고장 난 곳은 없는지, 괜스레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문제는 멀미약을 먹은 아이들이 잠에서 깨버렸다는 것. 앞으로 갈 길이 구만린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다행히 버스가 출발하자, 아이들도 다시 잠이 들었다. 아직은 멀미약의 효과가 남아 있나 보다.


그런데 1시간쯤 달리던 버스가 또 멈추는 게 아닌가. 이번엔 휴게소다. 하! 전략의 실패다. 처음부터 멀미약을 먹이는 게 아니었다. 바로 여기 휴게소에서 먹여 재웠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멍한 상태로 과자와 주스, 과일 등 주전부리를 집어 들었다.


20여 분을 쉰 버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산길에 접어들었다. 산허리를 감아 도는 꼬불꼬불한 비포장도로를 미니버스로 달리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나마 동호는 멀미약의 효과가 아직 남았는지 다시 잠이 들었지만, 동욱이는 잠도 못 이루고 메슥메슥하는 속을 부여잡고 계속 고통스러워 했다. 시원하게 한번 게워내고 나면 좀 편해지련만, 먹은 게 없어 그런지 토악질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비닐봉지에 얼굴을 파묻고 연신 웩웩거리며 헛구역질만 해대는 동욱이가 가엽고 안쓰럽다. 하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아이고, 맙소사! 기진맥진해서 탈진 상태에 이른 동욱이는 어느 산꼭대기에 있는 다음 휴게소에 이르러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라오스는 철도가 없는 나라다. 몇 해 전 메콩강을 이웃하는 태국에서 비엔티안 인근까지를 잇는 짧은 노선의 철도가 개통했다고 하지만, 그게 전부다. 


제국주의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는 침략국의 수탈 전략으로 철도가 발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겪으며 식량과 자원을 수탈하고 대륙 진출의 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일본의 전략으로 철도가 발달하게 되었다. 하지만 라오스는 사정이 다르다. 프랑스의 식민지였음에도, 대부분이 산악지대라는 이유로 전략적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제국주의 지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철도마저 개설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도로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다. 포장된 길이라고 해도 곳곳이 파이고, 구불구불 산길에 비포장도로도 많다. 그런 길로 버스를 타고 장시간 이동한다는 게 아이들에겐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방비엥에 들르지 말고 곧장 비행기로 루앙프라방으로 가면 어떨지, 고민스러웠다. 결국, 방비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고난의 길을 선택했고, 오늘 동욱이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산 정상 휴게소에서 한번 쉰 버스는 다시 두어 시간을 달렸고, 어느 고산마을 가게 앞에서 또 한 번 쉬었다. 그리고 또 달렸다. 도착할 듯 말듯, 수많은 고산마을을 지나쳐 오후 4시, 드디어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장작 7시간의 고된 이동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숙소까지 또 가야 한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르벨에어(Le Bel Air). 뚝뚝을 잡아타고 이동하니 또 한 시간이다. 끔찍하다. 





루앙프라방은 생각보다 컸다. 하긴 라오스의 전신인 란싼 왕국부터 1563년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이 나라의 수도였으니 방비엥과는 비할 바가 없겠다. 거칠 게 없는 햇볕과 파란 하늘, 그 아래 나지막이 놓인 붉은 지붕의 오랜 집들과 사원들. 강렬하고 고즈넉한, 자연과 삶의 아이러니랄까. 오랜 이동으로 정신이 몽롱하다.







숙소에 도착하지마자, 짐을 벗어 던지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메콩강의 지류인 칸강(Khan River) 인근에 자리 잡은 르벨에어는 이른바 ‘여행자거리’라고 불리는 중심가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대신 무료로 셔틀을 운영한다. 셔틀 출발 시각이 5시 30분. 몸은 지쳤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려면 어쩔 수 없다.


온종일 굶주린 우리는 한식집을 찾았다. 김치볶음밥도 먹고, 라면도 먹었다. 역시 김치와 라면이 최고다. 배불리 먹고,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마시고 있자니 비로소 마음에 평안이 찾아든다. 메콩강도 눈에 들어오고. 이제 보니 루앙프라방으로 왔던 오늘 하루가 꼭 메콩강을 빼닮았다. 어찌나 저렇게 느린지 말이다. 느리면 느린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그냥 저렇게 흘러가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나 보다. 메콩강이 흐르는 대로 루앙프라방을 즐겨야겠다.





9시, 다시 셔틀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루앙프라방에서의 첫날밤. 맑은 하늘은 간데없고 천둥 번개가 몰아쳤다.



내역 

금액 

 휴게소 간식

 20,000낍

 뚝뚝

 70,000낍

 저녁

 180,000낍

 커피

 20,000낍

 맥주, 주스

 25,000낍

 숙소

 47.57달러(380,560낍)

 총계

 695,560낍


Posted by alternative
싸바이디, 라오스2014. 12. 3. 00:03

[9월 5일] 비행석은 없었다(라오스 방비엥) 


애초 방비엥에서 며칠을 머물지 정해놓은 건 없었다. 전체 여행은 12일이고, 비엔티안과 방비엥, 루앙프라방 이렇게 3곳을 가겠다는 계획만 있었다. 라오스의 관문이자, 우선순위에서 제일 밀린 비엔티안은 앞뒤로 하루씩만 머물 생각이었다. 남는 건 10일. 오늘 블루라군(Blue Lagoon)을 다녀오면서 4일간의 방비엥 일정을 마무리하고, 내일 루앙프라방으로 넘어가면 딱 맞겠구나 싶었다. 




블루라군은 방비엥에서 가장 유명하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비행기도 없어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미니버스를 온종일 타야 하는 고생을 감수하고 방비엥으로 온 것도 블루라군이 한몫했다. 웹사이트에서 본 사진만으로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천국으로 가는 날, 아내는 치통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평소에는 없던 치통이 왜 여행 와서 걸리는지, 안쓰럽다. 현실은 곳곳이 모순이고 고통이다.





아침까지 이어지던 비가 10시쯤 되니 잦아든다. 드디어 출발. 기세 좋게 뚝뚝을 불렀다. 밤에 내린 비로 길이 험하다. 여기저기 파이고 물이 고였다. 6km 정도 되는 거리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뚝뚝을 타길 잘했다. 논길을 지나고, 산길도 지나고, 마을도 지나 30분을 덜커덕거리며 달렸다. 뚝뚝은 왕복 120,000낍. 우리는 한대를 통째로 빌렸지만, 많은 지구별 여행자들은 여럿이 합승해서 한대를 채우기도 한다.








블루라군의 정식 명칭은 탐푸캄(Tham Phu Kham)이다. 푸캄 동굴이란 말이다. 그런데 동굴보다 라군(Lagoon, 석호)이 더 유명하다. 에메랄드 물빛 때문이다. 그래서 블루라군이다. 하지만, 이것도 다 비가 안 오는 건기 때 얘기다. 지금처럼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물빛이 다르다. 그냥 물빛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물론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바로 오늘 아침까지 비가 내렸으니 물빛이 좋을 리가 없다. 그래도 막상 와보니 많이 아쉽다. 허탈하기도 하고. 도저히 그냥 돌아갈 수 없어 푸캄 동굴이라도 오르기로 했다. 꿩 대신 닭이지만, 전화위복을 바라는 심정이었다.


푸캄 동굴을 가려면 블루라군 뒷산을 올라야 한다. 입구에서 올려다보니 산세가 보통 험한 게 아니다. 등산로가 정비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상당히 가파르다. 산이라면 어느정도 자신 있었지만, 약간 겁이 났다. 뚝뚝 기사는 자기가 가이드를 할 테니 50,000낍을 더 내라고 했다. 얼떨결에 그러자고 하니, 동호 손을 잡고 저만치 앞서가기 시작한다. 아내와 동욱이가 뒤따랐고, 내가 맨 마지막으로 따라붙었다.





한 10여 분 올랐을까. 드디어 동굴입구가 나왔다. 특별히 이정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뚝뚝 기사가 가이드로 따라오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칠 게 분명했을 아주 작은 입구였다.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니 와불이 나온다. 마을로 들어오는 액이나 재해를 막아주고 안녕을 비는 곳, 우리로 치면 성황당인 셈이다. 와불을 모시는 건 부처가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들었을 때 자세가 바로 모로 누운 자세이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의 평안이 곧 깨달음이다.





와불을 지나 조금만 들어가니 온통 암흑세계이다. 관광지라고 입장료까지 받으면서 조명이 설치된 것도 아니고, 통행로가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울퉁불퉁하고 미끈거리는 석회암 바위와 지하수가 한데 어울린, 그야말로 야생의 동굴에서 렌턴과 휴대전화 불빛에 의존하며 앞으로 나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게다가 박쥐라도 훅 출몰하는 건 아닌지, 발목까지 차오르는 지하수에 에일리언과 같은 괴생물체가 잠복하고 있는 건 아닌지, 길을 잘못 들어 영영 이곳에서 못나가게 되는 건 아닌지, 몹쓸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혹시라도 <라퓨타>에 나오는 비행석 같은 게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여러번 두드려 봤지만, 손만 아팠다.


그렇게 40여분 암흑세계를 돌아 다시 빛의 세계로 나왔다. 동호는 뚝뚝 기사 손을 잡고 잘 걸었다. 무서움에 약간 얼어 있는 상태 같기도 하고. 반면 동욱이는 짜증이 잔뜩 치밀었다. 도대체 언제 끝나냐, 왜 또 걷냐, 막판 10분을 남기고 수도 없이 되물었다.  


그새 블루라군에서 다이빙과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마냥 부러운 마음으로 발만 물에 담근 채 물가에 걸터 앉아 구경하고 있는데, 동욱이와 동호가 아빠도 다이빙 한번 해보라고 부추긴다. 허걱. 잠깐 망설여지긴 했지만, 절대 못할 일이었다. 무서운 일은 딱 질색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느낌이 어떨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물론 돌아오는 길에는 후회가 막급이었지만. 





시내로 돌아와 은행에서 환전했다. 애초 라오스로 들고 들어온 돈은 100만원. 인천공항에서 달러로 바꿨고, 라오스에서는 호텔에서 조금씩 낍으로 바꿔 썼다. 숙박비처럼 큰돈은 달러나 카드로 결재할 수 있었다. 호텔에서 환전을 해도 손해가 큰 건 아니다. 어디서나 기본적으로 1달러에 8,000낍은 받는다. 은행에서는 약간 높은 8,032낍. 500달러를 바꾸니 무려 4,016,000낍이다. 16,000낍을 벌어 기분은 좋지만, 갑자기 돈이 다발로 생기니 간수할 일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루앙프라방으로 넘어갈 미니버스를 예약했다. 방비엥으로 올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인 여행사에서 예약하려 했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사람이 없어 포기했다. 한국인 여행사라고 특별히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니, 큰 상관은 없다. 워낙에 여행자가 많은 곳이라 어느 여행사건 버스비도 같았다. 루앙프라방까지는 80,000낍. 내일 아침 8시 40분까지 숙소로 픽업을 오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아이들은 바로 수영장으로 뛰어든다. 애초 오후에는 탐짱(Tham Chang)에 가려 했으나, 글러 먹었다. 한번 수영장으로 들어간 애들은 저녁녘에 입술이 퍼레져서야 밖으로 나왔다. 





제법 머리가 커진 아이들이 자기 하고 싶은 데로만 하려 드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게 못마땅하다가도, 이렇게 품을 벗어나는 것이구나 싶으니 서운한 마음마저 든다. 그러니 독립이란 아이들이 해야 할 게 아니라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닐지 모르겠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 마주칠 수 있는 가장 고약한 적은 다름아닌 부모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내역

금액

블루라군

뚝뚝 120,000

입장료 10,000*2=20,000

가이드 50,000

랜턴 대여 10,000*2=20,000

물 4,000

아이들 조식

25,000*2=50,000

점심(햄버거, 치즈버거, 햄샌드위치, 주스, 커피 )

158,000

루앙푸라방 미니버스 예약

80,000*4=320,000

저녁(햄 피자*2, 쥬스, 콜라, 사이다)

150,000

맥주*2, 물

24,000

숙박

460,000

합계

1,352,000



Posted by alternative
싸바이디, 라오스2014. 11. 13. 23:56

[9월 4일]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라오스 방비엥)


도마뱀이었다. 어젯밤 자리에 누우려고 불을 끄려는 순간 불현듯 출몰한 녀석. 두 쌍의 다리와 아랫배, 심지어 꼬리 끝까지 잔뜩 힘을 주고 천정에 딱 달라붙어 있던 녀석은 내가 자기를 발견한 것을 직감이라도 했는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어디로 갔을까. 혹시라도 잠든 내 몸을 누비고 다니는 건 아닐지. 자리에 누웠지만, 불안해서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다. 다시 불을 켰다. 녀석에게 내가 잠들지 않았음을 알려야 했다. 그러니 허튼수작 말고 조용히 짱박혀 있으라고.


라오스에서 도마뱀만큼 흔한 동물도 없다. 집집이 벽면 가득 도마뱀이 기어 다니기도 한다. 동욱이와 동호에게 “저기 좀 봐. 도마뱀이야. 어때? 귀엽지?”라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런데 방안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아무리 작고 해가 없는 녀석이라도 파충류가 아닌가. 툭 튀어나온 두 눈에 혀를 날름거리며 축축한 표피를 가진 파충류와 함께 잠을 자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하얗게 지새고 말았다. 젠장! 차라리 눈에 띄지나 말지, 하필 불 끄고 자려는 순간 나타날 게 뭐람. 이게 다 의도치 않게 숙소를 옮긴 후과라고 생각하니 이만저만 속상한 게 아니었다. 


서둘러 아침 식사를 마치고 숙소부터 옮겼다. 미리 봐둔 곳은 빌라 방비엥 리버사이드(Villa Vangvieng Riverside). 남송브릿지 넘기 바로 직전에 있는 곳이다. 







이번에 숙소를 고른 기준은 수영장이다. 쏭강에서 튜빙이나 카약을 즐기지 못하는 대신 수영장에서 실컷 놀 작정이었다. 그래서 어제와 그제 오가며 눈여겨봐 둔 곳이 바로 빌라 방비엥 리버사이드다. 그 바로 맞은편에 있는 리버사이드 부티크 리조트(Riverside Bouti이que Resort)도 눈에 띄었지만, 너무 비싸다. 시설이 아주 좋아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빌라 방비엥 리버사이드는 아고다(www.agoda.com)에서 57.50달러. 이것도 약간 비싼 감이 없지 않지만, 수영장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 흔쾌히 결정했다.




애초 라오스로 떠나면서 첫날 빼고는 숙소를 예약 하지 않았다. 현지에서 돌아다니며 그때그때 잡을 요량이었다. 마음에 드는 숙소가 있으면 들어가서 구경하고 가격을 알아봤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비교했다. 주로 트립어드바이저(www.tripadvisor.co.kr))와 아고다, 익스피디아(www.expedia.co.kr)를 이용했다. 여행하기 참 좋은 세상이다.


숙소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수영장이 눈에 띈다. 쏭강과 카르스트 지형의 멋드러진 산들을 배경으로 한 야외수영장이다. 와우, 멋지다!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내 생에 이렇게 멋진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게 될 줄이야. 황송하기까지 하다. 애들도 신이 나서 얼른 옷부터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입수했다. 동욱이는 구명조끼를 입고 동호는 튜브를 찼다. 물이 깊어서 걱정이었지만, 잘 논다. 부대끼는 사람 단 한 명도 없이, 멋드러진 풍경을 배경까지, 하늘 아래 이런 수영장이 어디 또 있을까.









해가 중천을 넘긴지도 한참이나 지났지만, 애들은 밥 먹을 생각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밖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 오기로 했다. 팬케익과 샌드위치, 오렌지쥬스를 사들고 돌아오는데 한 꼬마 아이가 앞서 지나간다. 동욱이 나이쯤 되었을까. 윗옷을 벗은 채, 바지춤이 엉덩이까지 내려와 있었다. 약간 망설였지만, 뒷모습이니 괜찮겠다 싶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아뿔싸! 갑자기 뒤를 돌아보는게 아닌가. 이미 눌러진 셔터를 무를 수도 없고, 어쩌나. 엉겁결에 “쏘리”라고 내뱉었지만, 영 마음에 걸린다.





라오스에 오면서 사진을 많이 찍고 싶었다. 렌즈도 장만하고 삼각대도 구입했다. 그런데 사진 찍는 게 쉽지 않다. 무엇보다 사람을 찍는 게 그렇다. 오리엔탈리즘이랄까. 카메라 렌즈에서 우월감과 동정심을 걷어낼 수 없다. 머리로는 그러지 말자고 되뇌지만, 자꾸 비교하게 된다. 때로는 연민하고 심지어 안심하며, 구경꾼의 시각으로 그들을 타자화시킨다.





수영장에서 실컷 놀고 방으로 들어와 며칠 묵혀둔 빨래를 했다. 문제는 널어둘 곳이 없다는 점. 하는 수 없이 노끈을 사와 방 안을 가로질러 빨랫줄을 설치했다. 벽에 박힌 못이 없어 커튼 봉을 이용해 가까스로 빨래를 널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럴수가. 젖은 빨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커튼 봉이 부러져 버렸다. 이걸 어쩐다. 자진 신고해야 할지 모른 척해야 할지. 약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남은 노끈으로 부러진 봉을 묶고 대충 수습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설마 나중에 발견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진 않겠지.


온종일 제대로 먹은 것도 없이 물놀이에 전념한 탓에 해가 지기도 전에 허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배를 두드리며 돌아오는데, 점입가경이라더니 이번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 주먹만 한 귀뚜라미가 방에서 파드닥대며 날아다니는 게 아닌가. 차라리 조용히 천장에 붙어 있는 도마뱀이 낫지, 저렇게 요란뻑적지근하게 나부대는 귀뚜라미라니. 혹시 바퀴벌레인가. 가뜩이나 너무 커서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생각이 바퀴벌레에게까지 미치니 소름이 돋아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얼른 수건을 집어 들고 귀뚜라미에게 돌진, 무차별적으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침대를 이리저리 밀어젖히고 수없이 사방을 난타한 끝에 겨우 귀뚜라미를 잡을 수 있었다. 덕분에 커튼 봉에 이어 침대 다리가 하나 부러졌다. 겨우 아귀를 맞춰 침대를 올려 얹으니 다행히 무너지진 않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체크아웃하자마자 멀리 떠야겠다.


잠자리에 들며 동욱이에게 물었다. 대체 뭣 하러 이리 멀리 와서 고생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서울에도 수영장은 많은데 말이다.


“동욱아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뭐가 제일 좋았어?”

“오늘 수영한 거.”

“보트 탄 것 보다 수영한 게 더 좋아?”

“응.”커히


심보선 시집을 한 권 들고 와서 읽고 있다. 오늘 마음에 남는 시는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다. 낮에 마주한, 그 아이가 다시 떠오른다.


그때 하늘 아래 벗은 바지 모양

누추하게 구겨진 생은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였다

장대하고 거룩했다





내역 

금액 

 숙소

57.50$(460,000낍)

 점심(팬케익, 치즈케익, 치킨샌드위치, 오렌지쥬스2, 아이스커피2)

145,000낍

 빨랫줄

10,000낍 

 저넉(불닭볶음, 계란말이, 공기밥)

124,000낍

 라오맥주2

20,000낍

 합계

759,000낍


Posted by alternative
싸바이디, 라오스2014. 10. 17. 12:50


한국 닭이나 라오스 닭이나, 새벽에 울어 젖히긴 매한가지다. 빛에 민감한 닭에게는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겠지만, 느지막이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 나로서는 영 마뜩잖은 일이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오니 무거운 듯 낮게 깔린 구름이 세상을 감싸고 있다. 잔뜩 머금은 빗방울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다. 



방비엥 첫날 숙소인 타본숙리조트(Thavonsouk Resort)는 쏭강 바로 옆에 자리 잡아 풍광이 좋다. 특히 야외 식당에서 바라보는 쏭강의 경치는 석회암의 오랜 풍화작용으로 탄생한 카르스트 지형의 멋스러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최고였다. 덕분에 유자잼을 바른 바게트와 커피의 단출한 식사도 더없이 풍족했다.



쏭강의 풍경에 만족한 우리는 이곳에서 하루 더 묵을 요량으로 프런트 데스크를 찾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이미 예약이 꽉 차서 더는 받을 수 없다는 게 아닌가.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하루 더 묵을 수 있다고 했는데, 불과 하룻밤 사이에 예약이 꽉 찰 수 있는 것인지. 그러더니 대뜸 다른 리조트를 소개해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기 시작했다. 그쪽 지배인이 자기 친구라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반신반의하면서도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어 따라나섰다.


타본숙리조트 지배인이 앞장서 찾아간 곳은 빌라남송(Villa NamSomg)였다. 쏭강을 따라 타본숙리조트와 이웃해 있어 경치도 좋고 넌지시 둘러본 시설도 괜찮았다. 오케이. 여기서 하루 묶기로 하고 얼만지 물었다. 그랬더니 50달러란다. 타본속리조트에서는 35달러에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15달러를 더 내야 한다니. 그럴 순 없었다. 똑같이 35달러에 맞춰 달라고 했고, 난처한 표정을 몇 번 주고받은 끝에 40달러로 합의했다.





숙소를 바꿔 짐을 풀고, 동네 나들이에 나섰다. 우리의 목표는 일단 눈앞에 보이는 쏭강 위의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얼기설기 엮인 쇠줄과 엉성하게 깔린 널빤지만으로 모양새를 갖춘 다리는 콘크리트 다리에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걷고 싶은 매력이 가득했다.


남송브릿지(NamSong Bridge). 보기에는 엉성해도 통행세를 받는다. 걸어가면 4,000낍, 자전거는 6,000낍, 오토바이는 10,000낍이다. 방비엥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라 할 수 있는 블루라군으로 가는 길목이라 돈을 받는 것 같다. 아무튼 다리는 생각보다 튼튼했다. 흔들림도 거의 없고. 하긴 뚝뚝과 트럭도 오가는 길이니 그럴 수밖에.





다리 건너편은 이쪽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온통 여행자뿐이어서 이곳이 정말 라오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지만, 건너편은 그렇지 않았다. 논과 밭이 있고 소 떼가 지나다니는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었다. 한가로이 유영하며 동네 구석구석 살펴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사정이 달랐다. 날이 너무 더워 한걸음 뗄 때마다 어디까지 가야 하느냐고 아우성이다. 조금만 더 가면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며 어르고 달래보지만 소용없다. 물론 아이스크림 가게도 없다. 작은 가게가 있어 먹고 싶은 걸 고르라고 하니 껌을 고른다. 아이고, 껌이라니. 별수 없이 껌 하나씩 질겅질겅 씹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껌 하나의 약발은 30분에 지나지 않았다. 단물만 쏙 빼먹는 약삭빠른 녀석들 같으니라고!



점심을 먹고 자전거 대여점을 찾았다. 블루라군을 가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여기서 6km 정도 떨어진 블루라군을 가려면 자전거를 타던지 오토바이를 타야 한다. 아니면 뚝뚝을 타야 한다. 동욱이가 탈 수 있는 자전거만 있으면 동호는 내가 어떻게든 태우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어린이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 없다는 점. 어른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은 여럿이지만, 어린이 자전거는 없다. 아이들과 방비엥을 즐기는 건 정말 불가능하단 말인가.




그러다 딱 한 곳, 어린이 자전거가 있는 곳을 발견했다. 자전거가 조금 커 보이긴 했지만, 동욱이가 잘 타주길 바랐다. 최근 두발자전거를 타기 시작해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었던 터라 가능하리라 믿었다. 자전거를 길가로 빼고 브레이크와 페달을 점검한 후 안장을 최대한 낮췄다. 동욱이가 올라타자 발끝이 겨우 땅에 닿는다. 녀석도 큰 자전거가 부담되었는지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드디어 페달을 힘차게 밟고 출발! 그러나 시작부터 이리저리 비틀거리던 자전거는 곧 자리를 잡길 바라는 바람을 저버리고 그대로 꼬꾸라져 버렸다. 어깨를 다쳤는지 찡그리며 일어난 동욱이가 다가와 머쓱한 표정으로 조용히 말한다. 애나 어른이나, 넘어지면 아픈 것보다 창피한 게 더 문제다.


“왜 넘어졌는지 알아?”

“몰라.”

“브레이크가 고장 났어.”

“그랬구나. 어쩐지…….”


방비엥의 가장 큰 매력은 쏭강이다. 많은 사람이 쏭강에서 튜빙이나 카약을 즐긴다. 애들이 어린 탓에 우리는 슬로우보트를 선택했다. 카약보다 조금 크고 조그만 모터가 달린 배에 두 명씩 타고 한 시간가량 쏭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되돌아온다. 비용은 한사람 당 80,000낍. 어린이 할인은 없다.


동욱이와 나, 동호와 아내가 각각 한배에 올라탔다. 구명조끼까지 차려입었지만, 솔직히 무섭다. 애써 진정해보려 하는데 마음을 다잡기도 전에 배가 출발한다. ‘털털털털’ 모터 소리가 울리고 물살을 가로질러 배가 움직인다. 으악! 배가 너무 작다. 그에 비해 물살은 너무 세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배가 뒤집힐 것 같다. 양손으로 배를 꼭 움켜쥔다. 


다행히 무서움은 이내 재미로 바뀌었다. 손을 뻗어 물살을 가르기도 하고 아내와 동호가 탄 배가 가까이 붙으면 물장난을 치기도 했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 놓인 쏭강의 풍경도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어느 정도 상류에 이르자 맥주를 마시며 튜빙과 카약을 즐기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크게 음악을 틀어 놓은 클럽도 있다. 음악에 맞춰 술을 마시며 춤을 추고 있는 무리로 가득했다. 그리고 세상에나! 물이 뿜어져 나오는 농구대라니! 저걸 한국에 들여오면 대박 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한때는 쏭강 주변의 술집들이 여행자들의 해방구였다고 한다. 과도한 음주와 마약으로 수많은 사건사고가 벌어졌고, 급기야 정부가 이들을 철거하고 규제하기 나섰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차분해졌다고 하는데, 젊음의 혈기가 어디 철거와 규제로 수그러들겠나 싶다. 지금 여기서 몸을 흔들고 있는 저 자유로운 젊은 영혼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존재다.


숙소로 돌아와 조금 뒹굴다 저녁을 먹을 채비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도 저녁은 한식이다. 아니, 정확히 라면이다. 여기까지 와서 라면을 먹는 게 억울하지만, 이게 다 입이 짧은 내 탓이다. 애들도 라면이라니 무조건 ‘콜!’이다. 한국인 식당이 여럿 있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먹고 싶은 걸 먹어 기분이 좋아진 아이들은 돌아오는 길에 가게마다 “싸바이디” 인사를 건넸다.







항목 

 금액

다리 통행료

16,000낍 

간식(껌, 물 등)

7,000낍 

지도

25,000낍 

슬리퍼

20,000낍 

점심

154,000낍 

슬로우보트

160,000낍 

저녁

125,000낍 

라오비어 등

25,000낍 

숙박비

320,000낍 

합계

852,000낍 




Posted by alternative
싸바이디, 라오스2014. 9. 26. 15:58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우기를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첫날부터 이렇게 비가 내리다니. 절망스러웠다. 그래도 한국의 장마처럼 온종일 내리지는 않는다고 하니 어서 개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창문으로 빼꼼히 바라본 라오스의 아침은 저녁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른 시간이지만 상점은 모두 문을 열었고, 거리를 달리는 수많은 오토바이와 자전거도 분주했다. 야간노동과 밤문화에 익숙해져 잊고 있었던 아침이랄까. 어서 그 풍경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짐을 꾸려 밖으로 나섰다. 아이들은 우비를 챙겨 입었고 아내와 나는 우산 하나를 받쳐 들었다.



 


우리가 묵은 숙소인 ‘도우앙찬 플라자 호텔(Douangchanplaza Hotel)’은 이른바 ‘여행자 거리’라고 불리는 중심가와 다소 떨어져 있다. 걸어서 30여 분 정도. 도시 구경도 할 겸 쉬엄쉬엄 걸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숙소에서 나오자 곳곳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뚝뚝’이 물려와 “헤이, 뚝뚝?”이라며 호객 행위를 벌인다. 초행길이 아니니 알아서 잘 갈 수 있다는 듯 우쭐하며 “노 땡규”라고 대답했다. 지도를 펼쳐 놓고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호기로운 개척자 코스프레를 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문제는 길이다. 아니 캐리어다. 각자 둘러맨 배낭 4개 만으로는 모든 짐을 넣을 수 없어 여행용 캐리어 가방을 하나 가져왔는데, 울퉁불퉁하고 여기저기 물이 고인 길이라 도무지 쉽게 끌고 갈 수 없다. 게다가 아이들은 어찌나 꾸물꾸물하던지. 무거운 캐리어를 주체하지 못한 채 비를 홀딱 맞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호기롭기는커녕 우스꽝스러울 게 분명했다. 아내도 같은 마음이었던지 그냥 ‘뚝뚝’을 타자고 했다. 


결국 ‘뚝뚝’을 잡아타고 ‘여행자 거리’로 이동했다. 타고 보니 생각보다 먼 거리였고, 걸어왔으면 참 처량했겠구나 싶었다. 현명한 결정을 내려 다행이라 위안하며 운전사에게 물었다.


“땡큐. 하우 머치?”

“피프티 싸우전드 낍”

“피프틴?”

“노, 피프티”


5만 낍이라니. 순간 우리 돈 5만 원이 연상되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침착해 하며 머릿속 계산기를 돌리는데, ‘5만을 8로 나누면, 8*6에 48이고, 2가 남으니….’ 으악, 내가 이리도 수에 약했단 말인가. 바가지를 덤터기로 쓰는 것이 확실한 것 같은데 대화는커녕 계산도 안 되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순순히 5만 낍을 내고 돌아서니 앞으로 돈 쓸 일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라오스 화폐 단위는 낍(kip)이다. 대략 8천낍이 1달러정도, 원화로 치면 천원꼴이다. 화폐 가치가 너무 낮아 자칫 큰 돈을 쓰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최소 화폐 단위는 천낍이고(오백낍짜리도 있다고 하는데 못봤다.) 오만낍까지 유통된다. 특이하게 동전은 없다. 웬만한 호텔이나 식당에서는 달러나 태국 돈 밧(THB)도 받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폰트레블(www.laokim.com)’. 라오스 현지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다. 한국의 사회적기업인 ‘착한여행(www.goodtravel.kr)’과 연계해 현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출발 시간은 2시, 가격은 1인당 5만낍이다. 방비엥까지 버스비가 5만낍인데, 시내에서 10분도 채 못 탄 뚝뚝이 5만낍이라니! 다시 한 번 분통이 터진다.


방비엥은 카약이나 짚라인, 튜빙과 같은 액티비티가 유명한 곳이다. 문제는 8살 동욱이와 5살 동호가 아직 어려서 이런 체험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느냐이다. 그래서 우리 애들도 그런 액티비티를 할 수 있을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짚라인이나 튜빙은 힘들 것 같고, 용감한 어린이라면 카약 정도는 탈 수 있을 거라고 답했다. 그러자 동호가 엄마에게  다가가 뒷엣말로 조용이 속삭인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동호가 좋다.


“나, 겁 많은데.”


내친김에 오늘밤 숙소까지 예약하고 맞은편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저렴하고 친절해서 현지인에게 인기가 많다고 여행책에 소개된 식당이었는데, 친절은 잘 모르겠고 저렴은 하더라. Sticky Rice 5천낍, Lao Traditionnal Noodle Soup 2만낍, Fried Meat Ball 만낍, 모두 3만5천낍에 점심을 해결했다. 





근처 커피집에서 차도 한 잔 마시고 다시 폰트레블로 와서 방비엥으로 가는 미니버스에 올랐다.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는 VIP버스(대형버스)와 미니버스(15인승), 두 종류가 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VIP버스를 탈 수도 있고 미니버스를 탈 수도 있다고 한다.


비가 오고 멈추길 몇 차례, 수많은 마을을 지나고 얼마나 달렸을까, 차가 멈춘다. 휴게소에 도착한 것이다. 휴게소라고 해봐야 길가에 있는 작은 가게 하나가 전부다. 멀미약을 먹고 꾸벅꾸벅 졸다 깬 아이들도 일어나 과자 하나씩을 집어 들었다. 재미있는 건, 화장실이 유료라는 점. 1인당 천낍을 내야 용변을 볼 수 있다.










다시 한참을 달려 5시 30분, 드디어 방비엥에 도착했다. 방비엥은 비엔티안에 비하면 훨씬 작은 도시다. 아니 마을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겠다. 거리상으로는 154km에 불과하지만(대략 서울-대전 거리) 도로 사정도 안 좋고, 무엇보다 애써 빨리 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3시간 반이 걸렸다. 소 떼가 지나가면 비켜줘야 했고, 사고난 차가 있으면 또 멈춰서 기다려야 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걸어가는데 한국인 식당이 눈에 띈다. 요새 글을 읽기 시작한 동욱이가 제일 먼저 반겼다. 자연스럽게 저녁은 한식으로 먹기로 하고 서둘러 숙소로 발길을 재촉했다.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온 아이들이 급격하게 지치기 시작했다.


불과 이틀 만에 먹는 한식은 꽤 반가웠다. 단, 너무 비싸다는 게 함정. 된장찌개와 두부김치, 계란말이를 먹고 거금 10만4천낍을 냈다. 점심에 비하면 무려 3개배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어젯밤의 염원이었던 맥주를 샀다. 라오스를 대표하는 라오 맥주(Beer Lao). 체코 맥주 기술로 만들어졌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한다. 술을 좋아하지 않으니 자세한 맛은 잘 모르겠지만, 무덥고 습한 하루를 보내고 마시는 라오 맥주 한 병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고 행복했다. 이제 방비엥까지 왔으니, 당분간 이동은 없다. 이곳에서 며칠 묵으며 마음껏 놀자. 






<오늘의 결산>

항목 

 금액

뚝뚝

 50,000낍 

점심

 35,000낍 

커피숍

 20,000*2(커피)+20,000*2(오렌지쥬스)=80,000낍

버스(방비엥)

 50,000*4=200,000낍 

휴게소

 1,000*4(화장실)+10,000*2(과자)+6,000(음료수)=30,000낍

저녁

 104,000낍 

간식

 20,000*2(맥주)+6,000(음료수)=46,000낍 

숙소

 35$(280,000낍)

합계

 825,000낍




Posted by alterna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