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메콩강이 흐르는 대로(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6시 30분, 아침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루앙프라방으로 넘어가는 날. 8시 40분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야 한다. 7시, 아침을 먹고 서둘러 짐을 챙겼다. 체크아웃하고 숙소 정문으로 나가니 미니버스가 벌써 대기 중이다.
버스는 한적했다. 좁은 버스를 타고 온종일 이동할 생각에 걱정이 많았는데 널찍하고 편하게 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웬걸, 우리를 태운 버스는 곧장 루앙프라방으로 향하지 않고 이 숙소, 저 숙소 들러 여행객을 계속 태우는 게 아닌가. 결국, 미니버스는 빈자리 하나 없이 꽉 들어찼고 우리는 맨 뒷자리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만선의 기쁨으로 흐믓해지기라도 한 걸까. 운전사는 갑자기 시계가게 앞에서 멈추더니 금박으로 반짝이는 손목시계를 하나 골라 차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시계라니, 무슨 영문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그리고 1시간쯤 갔을까. 이번에는 정비소에서 멈췄다. 차에서 내려 앞바퀴를 살피며 정비소 주인과 한참을 얘기하던 운전사는 급기야 승객들을 모두 내리게 했다. 멀미약을 먹고 잠들었던 아이들을 깨워 내려 보니, 앞바퀴 브레이크 패드를 교환하는 게 아닌가. 과연 이 버스가 루앙프라방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또 어디 고장 난 곳은 없는지, 괜스레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문제는 멀미약을 먹은 아이들이 잠에서 깨버렸다는 것. 앞으로 갈 길이 구만린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다행히 버스가 출발하자, 아이들도 다시 잠이 들었다. 아직은 멀미약의 효과가 남아 있나 보다.
그런데 1시간쯤 달리던 버스가 또 멈추는 게 아닌가. 이번엔 휴게소다. 하! 전략의 실패다. 처음부터 멀미약을 먹이는 게 아니었다. 바로 여기 휴게소에서 먹여 재웠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멍한 상태로 과자와 주스, 과일 등 주전부리를 집어 들었다.
20여 분을 쉰 버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산길에 접어들었다. 산허리를 감아 도는 꼬불꼬불한 비포장도로를 미니버스로 달리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나마 동호는 멀미약의 효과가 아직 남았는지 다시 잠이 들었지만, 동욱이는 잠도 못 이루고 메슥메슥하는 속을 부여잡고 계속 고통스러워 했다. 시원하게 한번 게워내고 나면 좀 편해지련만, 먹은 게 없어 그런지 토악질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비닐봉지에 얼굴을 파묻고 연신 웩웩거리며 헛구역질만 해대는 동욱이가 가엽고 안쓰럽다. 하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아이고, 맙소사! 기진맥진해서 탈진 상태에 이른 동욱이는 어느 산꼭대기에 있는 다음 휴게소에 이르러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라오스는 철도가 없는 나라다. 몇 해 전 메콩강을 이웃하는 태국에서 비엔티안 인근까지를 잇는 짧은 노선의 철도가 개통했다고 하지만, 그게 전부다.
제국주의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는 침략국의 수탈 전략으로 철도가 발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겪으며 식량과 자원을 수탈하고 대륙 진출의 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일본의 전략으로 철도가 발달하게 되었다. 하지만 라오스는 사정이 다르다. 프랑스의 식민지였음에도, 대부분이 산악지대라는 이유로 전략적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제국주의 지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철도마저 개설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도로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다. 포장된 길이라고 해도 곳곳이 파이고, 구불구불 산길에 비포장도로도 많다. 그런 길로 버스를 타고 장시간 이동한다는 게 아이들에겐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방비엥에 들르지 말고 곧장 비행기로 루앙프라방으로 가면 어떨지, 고민스러웠다. 결국, 방비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고난의 길을 선택했고, 오늘 동욱이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산 정상 휴게소에서 한번 쉰 버스는 다시 두어 시간을 달렸고, 어느 고산마을 가게 앞에서 또 한 번 쉬었다. 그리고 또 달렸다. 도착할 듯 말듯, 수많은 고산마을을 지나쳐 오후 4시, 드디어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장작 7시간의 고된 이동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숙소까지 또 가야 한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르벨에어(Le Bel Air). 뚝뚝을 잡아타고 이동하니 또 한 시간이다. 끔찍하다.
루앙프라방은 생각보다 컸다. 하긴 라오스의 전신인 란싼 왕국부터 1563년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이 나라의 수도였으니 방비엥과는 비할 바가 없겠다. 거칠 게 없는 햇볕과 파란 하늘, 그 아래 나지막이 놓인 붉은 지붕의 오랜 집들과 사원들. 강렬하고 고즈넉한, 자연과 삶의 아이러니랄까. 오랜 이동으로 정신이 몽롱하다.
숙소에 도착하지마자, 짐을 벗어 던지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메콩강의 지류인 칸강(Khan River) 인근에 자리 잡은 르벨에어는 이른바 ‘여행자거리’라고 불리는 중심가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대신 무료로 셔틀을 운영한다. 셔틀 출발 시각이 5시 30분. 몸은 지쳤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려면 어쩔 수 없다.
온종일 굶주린 우리는 한식집을 찾았다. 김치볶음밥도 먹고, 라면도 먹었다. 역시 김치와 라면이 최고다. 배불리 먹고,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마시고 있자니 비로소 마음에 평안이 찾아든다. 메콩강도 눈에 들어오고. 이제 보니 루앙프라방으로 왔던 오늘 하루가 꼭 메콩강을 빼닮았다. 어찌나 저렇게 느린지 말이다. 느리면 느린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그냥 저렇게 흘러가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나 보다. 메콩강이 흐르는 대로 루앙프라방을 즐겨야겠다.
9시, 다시 셔틀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루앙프라방에서의 첫날밤. 맑은 하늘은 간데없고 천둥 번개가 몰아쳤다.
내역 |
금액 |
휴게소 간식 |
20,000낍 |
뚝뚝 |
70,000낍 |
저녁 |
180,000낍 |
커피 |
20,000낍 |
맥주, 주스 |
25,000낍 |
숙소 |
47.57달러(380,560낍) |
총계 |
695,560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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