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바이디, 라오스2014. 12. 3. 00:03

[9월 5일] 비행석은 없었다(라오스 방비엥) 


애초 방비엥에서 며칠을 머물지 정해놓은 건 없었다. 전체 여행은 12일이고, 비엔티안과 방비엥, 루앙프라방 이렇게 3곳을 가겠다는 계획만 있었다. 라오스의 관문이자, 우선순위에서 제일 밀린 비엔티안은 앞뒤로 하루씩만 머물 생각이었다. 남는 건 10일. 오늘 블루라군(Blue Lagoon)을 다녀오면서 4일간의 방비엥 일정을 마무리하고, 내일 루앙프라방으로 넘어가면 딱 맞겠구나 싶었다. 




블루라군은 방비엥에서 가장 유명하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비행기도 없어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미니버스를 온종일 타야 하는 고생을 감수하고 방비엥으로 온 것도 블루라군이 한몫했다. 웹사이트에서 본 사진만으로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천국으로 가는 날, 아내는 치통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평소에는 없던 치통이 왜 여행 와서 걸리는지, 안쓰럽다. 현실은 곳곳이 모순이고 고통이다.





아침까지 이어지던 비가 10시쯤 되니 잦아든다. 드디어 출발. 기세 좋게 뚝뚝을 불렀다. 밤에 내린 비로 길이 험하다. 여기저기 파이고 물이 고였다. 6km 정도 되는 거리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뚝뚝을 타길 잘했다. 논길을 지나고, 산길도 지나고, 마을도 지나 30분을 덜커덕거리며 달렸다. 뚝뚝은 왕복 120,000낍. 우리는 한대를 통째로 빌렸지만, 많은 지구별 여행자들은 여럿이 합승해서 한대를 채우기도 한다.








블루라군의 정식 명칭은 탐푸캄(Tham Phu Kham)이다. 푸캄 동굴이란 말이다. 그런데 동굴보다 라군(Lagoon, 석호)이 더 유명하다. 에메랄드 물빛 때문이다. 그래서 블루라군이다. 하지만, 이것도 다 비가 안 오는 건기 때 얘기다. 지금처럼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물빛이 다르다. 그냥 물빛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물론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바로 오늘 아침까지 비가 내렸으니 물빛이 좋을 리가 없다. 그래도 막상 와보니 많이 아쉽다. 허탈하기도 하고. 도저히 그냥 돌아갈 수 없어 푸캄 동굴이라도 오르기로 했다. 꿩 대신 닭이지만, 전화위복을 바라는 심정이었다.


푸캄 동굴을 가려면 블루라군 뒷산을 올라야 한다. 입구에서 올려다보니 산세가 보통 험한 게 아니다. 등산로가 정비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상당히 가파르다. 산이라면 어느정도 자신 있었지만, 약간 겁이 났다. 뚝뚝 기사는 자기가 가이드를 할 테니 50,000낍을 더 내라고 했다. 얼떨결에 그러자고 하니, 동호 손을 잡고 저만치 앞서가기 시작한다. 아내와 동욱이가 뒤따랐고, 내가 맨 마지막으로 따라붙었다.





한 10여 분 올랐을까. 드디어 동굴입구가 나왔다. 특별히 이정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뚝뚝 기사가 가이드로 따라오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칠 게 분명했을 아주 작은 입구였다.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니 와불이 나온다. 마을로 들어오는 액이나 재해를 막아주고 안녕을 비는 곳, 우리로 치면 성황당인 셈이다. 와불을 모시는 건 부처가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들었을 때 자세가 바로 모로 누운 자세이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의 평안이 곧 깨달음이다.





와불을 지나 조금만 들어가니 온통 암흑세계이다. 관광지라고 입장료까지 받으면서 조명이 설치된 것도 아니고, 통행로가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울퉁불퉁하고 미끈거리는 석회암 바위와 지하수가 한데 어울린, 그야말로 야생의 동굴에서 렌턴과 휴대전화 불빛에 의존하며 앞으로 나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게다가 박쥐라도 훅 출몰하는 건 아닌지, 발목까지 차오르는 지하수에 에일리언과 같은 괴생물체가 잠복하고 있는 건 아닌지, 길을 잘못 들어 영영 이곳에서 못나가게 되는 건 아닌지, 몹쓸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혹시라도 <라퓨타>에 나오는 비행석 같은 게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여러번 두드려 봤지만, 손만 아팠다.


그렇게 40여분 암흑세계를 돌아 다시 빛의 세계로 나왔다. 동호는 뚝뚝 기사 손을 잡고 잘 걸었다. 무서움에 약간 얼어 있는 상태 같기도 하고. 반면 동욱이는 짜증이 잔뜩 치밀었다. 도대체 언제 끝나냐, 왜 또 걷냐, 막판 10분을 남기고 수도 없이 되물었다.  


그새 블루라군에서 다이빙과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마냥 부러운 마음으로 발만 물에 담근 채 물가에 걸터 앉아 구경하고 있는데, 동욱이와 동호가 아빠도 다이빙 한번 해보라고 부추긴다. 허걱. 잠깐 망설여지긴 했지만, 절대 못할 일이었다. 무서운 일은 딱 질색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느낌이 어떨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물론 돌아오는 길에는 후회가 막급이었지만. 





시내로 돌아와 은행에서 환전했다. 애초 라오스로 들고 들어온 돈은 100만원. 인천공항에서 달러로 바꿨고, 라오스에서는 호텔에서 조금씩 낍으로 바꿔 썼다. 숙박비처럼 큰돈은 달러나 카드로 결재할 수 있었다. 호텔에서 환전을 해도 손해가 큰 건 아니다. 어디서나 기본적으로 1달러에 8,000낍은 받는다. 은행에서는 약간 높은 8,032낍. 500달러를 바꾸니 무려 4,016,000낍이다. 16,000낍을 벌어 기분은 좋지만, 갑자기 돈이 다발로 생기니 간수할 일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루앙프라방으로 넘어갈 미니버스를 예약했다. 방비엥으로 올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인 여행사에서 예약하려 했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사람이 없어 포기했다. 한국인 여행사라고 특별히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니, 큰 상관은 없다. 워낙에 여행자가 많은 곳이라 어느 여행사건 버스비도 같았다. 루앙프라방까지는 80,000낍. 내일 아침 8시 40분까지 숙소로 픽업을 오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아이들은 바로 수영장으로 뛰어든다. 애초 오후에는 탐짱(Tham Chang)에 가려 했으나, 글러 먹었다. 한번 수영장으로 들어간 애들은 저녁녘에 입술이 퍼레져서야 밖으로 나왔다. 





제법 머리가 커진 아이들이 자기 하고 싶은 데로만 하려 드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게 못마땅하다가도, 이렇게 품을 벗어나는 것이구나 싶으니 서운한 마음마저 든다. 그러니 독립이란 아이들이 해야 할 게 아니라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닐지 모르겠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 마주칠 수 있는 가장 고약한 적은 다름아닌 부모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내역

금액

블루라군

뚝뚝 120,000

입장료 10,000*2=20,000

가이드 50,000

랜턴 대여 10,000*2=20,000

물 4,000

아이들 조식

25,000*2=50,000

점심(햄버거, 치즈버거, 햄샌드위치, 주스, 커피 )

158,000

루앙푸라방 미니버스 예약

80,000*4=320,000

저녁(햄 피자*2, 쥬스, 콜라, 사이다)

150,000

맥주*2, 물

24,000

숙박

460,000

합계

1,3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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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바이디, 라오스2014. 9. 26. 15:58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우기를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첫날부터 이렇게 비가 내리다니. 절망스러웠다. 그래도 한국의 장마처럼 온종일 내리지는 않는다고 하니 어서 개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창문으로 빼꼼히 바라본 라오스의 아침은 저녁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른 시간이지만 상점은 모두 문을 열었고, 거리를 달리는 수많은 오토바이와 자전거도 분주했다. 야간노동과 밤문화에 익숙해져 잊고 있었던 아침이랄까. 어서 그 풍경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짐을 꾸려 밖으로 나섰다. 아이들은 우비를 챙겨 입었고 아내와 나는 우산 하나를 받쳐 들었다.



 


우리가 묵은 숙소인 ‘도우앙찬 플라자 호텔(Douangchanplaza Hotel)’은 이른바 ‘여행자 거리’라고 불리는 중심가와 다소 떨어져 있다. 걸어서 30여 분 정도. 도시 구경도 할 겸 쉬엄쉬엄 걸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숙소에서 나오자 곳곳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뚝뚝’이 물려와 “헤이, 뚝뚝?”이라며 호객 행위를 벌인다. 초행길이 아니니 알아서 잘 갈 수 있다는 듯 우쭐하며 “노 땡규”라고 대답했다. 지도를 펼쳐 놓고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호기로운 개척자 코스프레를 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문제는 길이다. 아니 캐리어다. 각자 둘러맨 배낭 4개 만으로는 모든 짐을 넣을 수 없어 여행용 캐리어 가방을 하나 가져왔는데, 울퉁불퉁하고 여기저기 물이 고인 길이라 도무지 쉽게 끌고 갈 수 없다. 게다가 아이들은 어찌나 꾸물꾸물하던지. 무거운 캐리어를 주체하지 못한 채 비를 홀딱 맞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호기롭기는커녕 우스꽝스러울 게 분명했다. 아내도 같은 마음이었던지 그냥 ‘뚝뚝’을 타자고 했다. 


결국 ‘뚝뚝’을 잡아타고 ‘여행자 거리’로 이동했다. 타고 보니 생각보다 먼 거리였고, 걸어왔으면 참 처량했겠구나 싶었다. 현명한 결정을 내려 다행이라 위안하며 운전사에게 물었다.


“땡큐. 하우 머치?”

“피프티 싸우전드 낍”

“피프틴?”

“노, 피프티”


5만 낍이라니. 순간 우리 돈 5만 원이 연상되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침착해 하며 머릿속 계산기를 돌리는데, ‘5만을 8로 나누면, 8*6에 48이고, 2가 남으니….’ 으악, 내가 이리도 수에 약했단 말인가. 바가지를 덤터기로 쓰는 것이 확실한 것 같은데 대화는커녕 계산도 안 되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순순히 5만 낍을 내고 돌아서니 앞으로 돈 쓸 일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라오스 화폐 단위는 낍(kip)이다. 대략 8천낍이 1달러정도, 원화로 치면 천원꼴이다. 화폐 가치가 너무 낮아 자칫 큰 돈을 쓰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최소 화폐 단위는 천낍이고(오백낍짜리도 있다고 하는데 못봤다.) 오만낍까지 유통된다. 특이하게 동전은 없다. 웬만한 호텔이나 식당에서는 달러나 태국 돈 밧(THB)도 받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폰트레블(www.laokim.com)’. 라오스 현지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다. 한국의 사회적기업인 ‘착한여행(www.goodtravel.kr)’과 연계해 현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출발 시간은 2시, 가격은 1인당 5만낍이다. 방비엥까지 버스비가 5만낍인데, 시내에서 10분도 채 못 탄 뚝뚝이 5만낍이라니! 다시 한 번 분통이 터진다.


방비엥은 카약이나 짚라인, 튜빙과 같은 액티비티가 유명한 곳이다. 문제는 8살 동욱이와 5살 동호가 아직 어려서 이런 체험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느냐이다. 그래서 우리 애들도 그런 액티비티를 할 수 있을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짚라인이나 튜빙은 힘들 것 같고, 용감한 어린이라면 카약 정도는 탈 수 있을 거라고 답했다. 그러자 동호가 엄마에게  다가가 뒷엣말로 조용이 속삭인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동호가 좋다.


“나, 겁 많은데.”


내친김에 오늘밤 숙소까지 예약하고 맞은편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저렴하고 친절해서 현지인에게 인기가 많다고 여행책에 소개된 식당이었는데, 친절은 잘 모르겠고 저렴은 하더라. Sticky Rice 5천낍, Lao Traditionnal Noodle Soup 2만낍, Fried Meat Ball 만낍, 모두 3만5천낍에 점심을 해결했다. 





근처 커피집에서 차도 한 잔 마시고 다시 폰트레블로 와서 방비엥으로 가는 미니버스에 올랐다.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는 VIP버스(대형버스)와 미니버스(15인승), 두 종류가 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VIP버스를 탈 수도 있고 미니버스를 탈 수도 있다고 한다.


비가 오고 멈추길 몇 차례, 수많은 마을을 지나고 얼마나 달렸을까, 차가 멈춘다. 휴게소에 도착한 것이다. 휴게소라고 해봐야 길가에 있는 작은 가게 하나가 전부다. 멀미약을 먹고 꾸벅꾸벅 졸다 깬 아이들도 일어나 과자 하나씩을 집어 들었다. 재미있는 건, 화장실이 유료라는 점. 1인당 천낍을 내야 용변을 볼 수 있다.










다시 한참을 달려 5시 30분, 드디어 방비엥에 도착했다. 방비엥은 비엔티안에 비하면 훨씬 작은 도시다. 아니 마을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겠다. 거리상으로는 154km에 불과하지만(대략 서울-대전 거리) 도로 사정도 안 좋고, 무엇보다 애써 빨리 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3시간 반이 걸렸다. 소 떼가 지나가면 비켜줘야 했고, 사고난 차가 있으면 또 멈춰서 기다려야 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걸어가는데 한국인 식당이 눈에 띈다. 요새 글을 읽기 시작한 동욱이가 제일 먼저 반겼다. 자연스럽게 저녁은 한식으로 먹기로 하고 서둘러 숙소로 발길을 재촉했다.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온 아이들이 급격하게 지치기 시작했다.


불과 이틀 만에 먹는 한식은 꽤 반가웠다. 단, 너무 비싸다는 게 함정. 된장찌개와 두부김치, 계란말이를 먹고 거금 10만4천낍을 냈다. 점심에 비하면 무려 3개배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어젯밤의 염원이었던 맥주를 샀다. 라오스를 대표하는 라오 맥주(Beer Lao). 체코 맥주 기술로 만들어졌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한다. 술을 좋아하지 않으니 자세한 맛은 잘 모르겠지만, 무덥고 습한 하루를 보내고 마시는 라오 맥주 한 병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고 행복했다. 이제 방비엥까지 왔으니, 당분간 이동은 없다. 이곳에서 며칠 묵으며 마음껏 놀자. 






<오늘의 결산>

항목 

 금액

뚝뚝

 50,000낍 

점심

 35,000낍 

커피숍

 20,000*2(커피)+20,000*2(오렌지쥬스)=80,000낍

버스(방비엥)

 50,000*4=200,000낍 

휴게소

 1,000*4(화장실)+10,000*2(과자)+6,000(음료수)=30,000낍

저녁

 104,000낍 

간식

 20,000*2(맥주)+6,000(음료수)=46,000낍 

숙소

 35$(280,000낍)

합계

 825,000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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