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일] 비행석은 없었다(라오스 방비엥)
애초 방비엥에서 며칠을 머물지 정해놓은 건 없었다. 전체 여행은 12일이고, 비엔티안과 방비엥, 루앙프라방 이렇게 3곳을 가겠다는 계획만 있었다. 라오스의 관문이자, 우선순위에서 제일 밀린 비엔티안은 앞뒤로 하루씩만 머물 생각이었다. 남는 건 10일. 오늘 블루라군(Blue Lagoon)을 다녀오면서 4일간의 방비엥 일정을 마무리하고, 내일 루앙프라방으로 넘어가면 딱 맞겠구나 싶었다.
블루라군은 방비엥에서 가장 유명하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비행기도 없어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미니버스를 온종일 타야 하는 고생을 감수하고 방비엥으로 온 것도 블루라군이 한몫했다. 웹사이트에서 본 사진만으로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천국으로 가는 날, 아내는 치통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평소에는 없던 치통이 왜 여행 와서 걸리는지, 안쓰럽다. 현실은 곳곳이 모순이고 고통이다.
아침까지 이어지던 비가 10시쯤 되니 잦아든다. 드디어 출발. 기세 좋게 뚝뚝을 불렀다. 밤에 내린 비로 길이 험하다. 여기저기 파이고 물이 고였다. 6km 정도 되는 거리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뚝뚝을 타길 잘했다. 논길을 지나고, 산길도 지나고, 마을도 지나 30분을 덜커덕거리며 달렸다. 뚝뚝은 왕복 120,000낍. 우리는 한대를 통째로 빌렸지만, 많은 지구별 여행자들은 여럿이 합승해서 한대를 채우기도 한다.
블루라군의 정식 명칭은 탐푸캄(Tham Phu Kham)이다. 푸캄 동굴이란 말이다. 그런데 동굴보다 라군(Lagoon, 석호)이 더 유명하다. 에메랄드 물빛 때문이다. 그래서 블루라군이다. 하지만, 이것도 다 비가 안 오는 건기 때 얘기다. 지금처럼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물빛이 다르다. 그냥 물빛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물론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바로 오늘 아침까지 비가 내렸으니 물빛이 좋을 리가 없다. 그래도 막상 와보니 많이 아쉽다. 허탈하기도 하고. 도저히 그냥 돌아갈 수 없어 푸캄 동굴이라도 오르기로 했다. 꿩 대신 닭이지만, 전화위복을 바라는 심정이었다.
푸캄 동굴을 가려면 블루라군 뒷산을 올라야 한다. 입구에서 올려다보니 산세가 보통 험한 게 아니다. 등산로가 정비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상당히 가파르다. 산이라면 어느정도 자신 있었지만, 약간 겁이 났다. 뚝뚝 기사는 자기가 가이드를 할 테니 50,000낍을 더 내라고 했다. 얼떨결에 그러자고 하니, 동호 손을 잡고 저만치 앞서가기 시작한다. 아내와 동욱이가 뒤따랐고, 내가 맨 마지막으로 따라붙었다.
한 10여 분 올랐을까. 드디어 동굴입구가 나왔다. 특별히 이정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뚝뚝 기사가 가이드로 따라오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칠 게 분명했을 아주 작은 입구였다.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니 와불이 나온다. 마을로 들어오는 액이나 재해를 막아주고 안녕을 비는 곳, 우리로 치면 성황당인 셈이다. 와불을 모시는 건 부처가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들었을 때 자세가 바로 모로 누운 자세이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의 평안이 곧 깨달음이다.
와불을 지나 조금만 들어가니 온통 암흑세계이다. 관광지라고 입장료까지 받으면서 조명이 설치된 것도 아니고, 통행로가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울퉁불퉁하고 미끈거리는 석회암 바위와 지하수가 한데 어울린, 그야말로 야생의 동굴에서 렌턴과 휴대전화 불빛에 의존하며 앞으로 나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게다가 박쥐라도 훅 출몰하는 건 아닌지, 발목까지 차오르는 지하수에 에일리언과 같은 괴생물체가 잠복하고 있는 건 아닌지, 길을 잘못 들어 영영 이곳에서 못나가게 되는 건 아닌지, 몹쓸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혹시라도 <라퓨타>에 나오는 비행석 같은 게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여러번 두드려 봤지만, 손만 아팠다.
그렇게 40여분 암흑세계를 돌아 다시 빛의 세계로 나왔다. 동호는 뚝뚝 기사 손을 잡고 잘 걸었다. 무서움에 약간 얼어 있는 상태 같기도 하고. 반면 동욱이는 짜증이 잔뜩 치밀었다. 도대체 언제 끝나냐, 왜 또 걷냐, 막판 10분을 남기고 수도 없이 되물었다.
그새 블루라군에서 다이빙과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마냥 부러운 마음으로 발만 물에 담근 채 물가에 걸터 앉아 구경하고 있는데, 동욱이와 동호가 아빠도 다이빙 한번 해보라고 부추긴다. 허걱. 잠깐 망설여지긴 했지만, 절대 못할 일이었다. 무서운 일은 딱 질색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느낌이 어떨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물론 돌아오는 길에는 후회가 막급이었지만.
시내로 돌아와 은행에서 환전했다. 애초 라오스로 들고 들어온 돈은 100만원. 인천공항에서 달러로 바꿨고, 라오스에서는 호텔에서 조금씩 낍으로 바꿔 썼다. 숙박비처럼 큰돈은 달러나 카드로 결재할 수 있었다. 호텔에서 환전을 해도 손해가 큰 건 아니다. 어디서나 기본적으로 1달러에 8,000낍은 받는다. 은행에서는 약간 높은 8,032낍. 500달러를 바꾸니 무려 4,016,000낍이다. 16,000낍을 벌어 기분은 좋지만, 갑자기 돈이 다발로 생기니 간수할 일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루앙프라방으로 넘어갈 미니버스를 예약했다. 방비엥으로 올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인 여행사에서 예약하려 했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사람이 없어 포기했다. 한국인 여행사라고 특별히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니, 큰 상관은 없다. 워낙에 여행자가 많은 곳이라 어느 여행사건 버스비도 같았다. 루앙프라방까지는 80,000낍. 내일 아침 8시 40분까지 숙소로 픽업을 오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아이들은 바로 수영장으로 뛰어든다. 애초 오후에는 탐짱(Tham Chang)에 가려 했으나, 글러 먹었다. 한번 수영장으로 들어간 애들은 저녁녘에 입술이 퍼레져서야 밖으로 나왔다.
제법 머리가 커진 아이들이 자기 하고 싶은 데로만 하려 드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게 못마땅하다가도, 이렇게 품을 벗어나는 것이구나 싶으니 서운한 마음마저 든다. 그러니 독립이란 아이들이 해야 할 게 아니라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닐지 모르겠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 마주칠 수 있는 가장 고약한 적은 다름아닌 부모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내역 |
금액 |
블루라군 |
뚝뚝 120,000 입장료 10,000*2=20,000 가이드 50,000 랜턴 대여 10,000*2=20,000 물 4,000 |
아이들 조식 |
25,000*2=50,000 |
점심(햄버거, 치즈버거, 햄샌드위치, 주스, 커피 ) |
158,000 |
루앙푸라방 미니버스 예약 |
80,000*4=320,000 |
저녁(햄 피자*2, 쥬스, 콜라, 사이다) |
150,000 |
맥주*2, 물 |
24,000 |
숙박 |
460,000 |
합계 |
1,352,000 |
'싸바이디, 라오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월7일] 파방을 찾아라(루앙프라방 왕궁박물관, 왓 씨앙통, 푸시) (0) | 2015.01.29 |
---|---|
[9월 6일] 메콩강이 흐르는 대로(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0) | 2015.01.27 |
[9월 4일]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라오스 방비엥) (1) | 2014.11.13 |
[9월 3일] 쏭강에서 슬로우보트를 (라오스 방비엥) (0) | 2014.10.17 |
[9월 2일] “피프티 싸우전드 낍?"(라오스 비엔티안에서 방비엥으로) (0) | 2014.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