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바이디, 라오스2015. 2. 21. 12:01

[9월 8일] 하늘을 품은 메남콩(루앙프라방 꽝씨 폭포, 메콩강) 


아빠 옆에서 자던 동욱이가 어슴푸레 잠에서 깼는지, 아빠를 꼭 껴안는다. 그러다 잠시 후, 화들짝 놀라 깬 녀석이 엄마 침대로 후다닥 넘어간다. 그럼 그렇지. 이 녀석이 웬일로 아빠를 껴안나 싶었다. 엄마라고 생각해 껴안았는데 느낌이 그게 아니었던 거다. 


그런데 이미 엄마 품을 장악하고 있던 동호가 가만있을 리 없다. 두 녀석의 엄마 쟁탈전은 언제나 끝이 날지 모르겠다. 한쪽은 동욱이, 한쪽은 동호, 이렇게 똑같이 나누면 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 한 명이 온전히 엄마를 차지해야 한다.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 영화 글루미썬데이의 치명적 사랑은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해서 매력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전에는 내내 침대에서 빈둥대며 여행 책자를 넘겼다. 오늘은 또 뭘 하면서 알차게 보낼 수 있을지 궁리하며 말이다. 결론은 꽝씨 폭포. 시간이 허락하면 빡우 동굴까지, 루앙프라방 외곽을 돌아보는 일정으로 잡았다.


숙소에서 나오면서 비엔티안으로 돌아갈 비행기를 예약했다. 시내로 나가 여행사에서 예약하려 했으나, 숙소 지배인이 언제 돌아가느냐, 비행기는 예약했느냐, 안 했으면 여기서 하시라, 인터넷으로 비교해 보고 비싸면 안 해도 좋다며 갖은 친절을 베푸는 바람에 등 떠밀리듯 예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바가지. 1인당 90달러에 예약했으나, 시내에서 물어보니 75달러까지도 하더라. 행사 가격이니 취소할 수 없다는 말을 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꽝씨 폭포는 루앙프라방에서 남쪽으로 35km 떨어져 있다. 뚝뚝을 잡아타야 하는데, 시내에서는 200,000낍 정도 든다고 한다. 우리는 과감하게 숙소에서 콜서비스를 받았다. 비용은 250,000낍이다.





1시간을 달려 도착한 꽝씨 폭포 앞은 흡사 한국의 여느 관광지처럼 느껴졌다. 음식점과 각종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자연휴양림 느낌이다. 







폭포에서 흘러나온 계곡을 따라 난 산책길로 접어드니 야생에서 구조된 곰을 보호하고 있는 곰보호센터가 나온다. 역시나 기념품 가게가 있고, 불쌍한 곰에게 마음을 빼앗겨 조그만 반달곰 인형을 하나 샀다. 


폭포에서 흘러나온 물의 양은 엄청났다. 여러 개의 작은 폭포를 계속 만들어 내며 계곡을 이루고 있었다. 곳곳에는 커다란 웅덩이가 만들어져 자연스레 수영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물살도 빠르고 깊이도 알 수 없어 수영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30여 분을 걸어 오르니, 마침내 꽝시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50미터가 넘는 높이에서 쏟아지는 폭포수가 어찌나 어마어마하고 혼란스러운지, 우주의 탄생과 팽창의 비밀이 담긴 빅뱅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폭포를 배경으로 멋지게 사진 한 컷 남기고 싶은 바람은 사방팔방으로 흩뿌려지는 폭포수 아래에서 거품처럼 소멸했다. 오직 아이들만 신이 나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꽝씨 폭포에 흠뻑 젖어들었다.








다시 루앙프라방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사실 라오스 음식이 입맛에 안 맞아 먹는 게 늘 즐겁지 않았는데, 오늘 점심은 참 맛있게 먹었다. <The Coconut Garden>, Stir Fried Chicken with Garlic, Fried Rice with Chicken, Papaya Salad. 기분 좋게 배가 부르니 또 어디론가 가는 게 귀찮아졌다. 시간이 어중간하게 늦기도 했고. 그래서 빡우 동굴은 생략하고 메콩강변으로 향했다. 뉘엿뉘엿 떨어지는 햇살을 받은 왓 농씨쿤므앙(Wat Nong Sikhunmuang)이 반짝거린다.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는데 옥폽똑(Ock Pop Tok)이라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각종 스카프와 옷, 가방 등 전통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다. 물건들이 하나같이 매우 예뻐 눈길이 분주했지만, 값이 너무 비싸 지갑이 쉬 열리진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은 바로 옆에 있는 서점에서 라오스 지도를 한 장 사는 걸로 위로받을 수밖에 없었다.


메콩강변에 도착하니 마침 해가 뉘엿뉘엿 떨어진다. 해가 지면 메콩강은 하늘을 품는다. 낮에 세상을 품어 투박하고 무겁고 뜨거웠던 강이 물 본연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메콩강의 어원은 ‘어머니의 강’이란 뜻의 메남콩(Mae Nam Khong)이다. 라오스의 젖줄 메콩강은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길고, 열 번째로 수량이 많다. 또 각종 생물자원은 아마존강 유역에 이어 두 번째로 풍부하다. 마시고 씻는 것은 물론이고 농업과 어업에 교통과 관광까지, 라오스의 모든 것이 메콩강에서 비롯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콩강은 티베트에서 발원해 중국, 버마,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인도차이나 해로 흐른다. 라오스와 태국이 메콩강으로 나뉜 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애초 라오족은 메콩강 주변으로 흩어져 살았는데, 1893년 프랑스와 태국 간의 국경선 획정 조약으로 별안간에 국경선이 그어져 서로 다른 국민이 되었다. 아직도 메콩강 인근 태국 땅에 사는 라오족은 소수민족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껏 국경이란 늘 지도 위에 그어진 실선에 불과했다. 아니면 휴전선의 철조망으로 기억되거나. 그러니 눈앞의 메콩강이 국경선이란 게, 강 건너 저쪽이 태국이란 게 좀처럼 실감 나지 않는다. 실존하지 않는 가상으로써 이처럼 위력적인 존재가 어디 또 있을까. 끝도 시작도 아닌 곳, 국경의 밤은 까닭 없이 모호하고 애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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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바이디, 라오스2015. 1. 29. 23:51

[9월7일] 파방을 찾아라(루앙프라방 왕궁박물관, 왓 씨앙통, 푸시)


불이라도 난 건가. 새벽부터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설마하니 진짜 불이 난 건 아닐 테고. 화재경보기가 고장 난 것 같은데, 왜 안 끄는 건지. 참다못해 밖으로 나와보니 글쎄, 메미 소린지 새 소린지, 아무튼 자연의 소리다. 꾀꼬리 소리에 잠이 깨고 조식 룸서비스로 산듯하게 하루를 맞이하는 건 홈쇼핑 속 여행상품에서나 나오는 얘긴가 보다.


아침 10시, 일찌감치 셔틀을 타고 시내로 나왔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왕궁박물관. 여행자거리의 중심에 있기도 하지만, 루앙프라방이 라오스 최초 독립국가였던 란싼왕국(Lan Xang Kingdom)의 수도였단 점에서 왠지 모를 의무감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루앙프라방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황금불상, 파방(Pha Bang)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왕궁박물관으로 걷는데, 사람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날씨가 너무 무더운 것이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쏟아지는 햇살은 날 것 그대로였다. 100미터도 채 걷지 못하고 의자에 주저앉았고, 힘들다는 아이들의 아우성에 사탕이 투하되었다.













왕궁박물관 입구로 들어가니, 오른쪽으로 호 파방(Ho Pha Bang)이 있다. 파방을 안치하기 위해 만든 법당으로 황금색의 화려한 건물이다. 아직 파방을 옮겨놓진 않았다.






호 파방을 지나 중앙으로 늘어선 가로수 길을 따라가면 왕궁이 나온다. 1975년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되면서 왕정이 폐지되었고, 왕궁은 박물관으로 변했다. 라오스의 마지막 왕인 씨싸왕 왓타나 왕(King Sisavang Vatthana)은 라오 공산당에 체포되어 가택연금을 당했고, 저항운동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비밀수용소로 유배되어 사망했다. 왕궁박물관 안에는 이들 왕과 왕비, 그리고 왕세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동욱이와 동호는 초상화를 보고 불쌍하다며 도대체 왜 쫓겨났느냐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왕궁박물관에는 무릎이 보이는 반바지나 치마를 입으면 입장이 제한된다. 신발과 모자도 벗어야 하고, 당연히 사진 촬영도 금지다.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불상, 파방(Pha Bang)때문이다. 순금으로 만들어진 황금불상인 파방은 국가의 수호신으로 여겨지며 국왕이 정통성을 의미했다고 한다. 라오스 전신인 란싼왕국 파응움 왕이 크메르 제국의 공주와 결혼하며 불교를 받아들였는데, 그때 선물로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수도의 이름도 루앙프라방으로 바뀐 것이다.


파방은 왕궁박물관 오른쪽 맨 마지막 방에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직접 들어갈 수는 없고, 건물 바깥에서 오른쪽 두 번째 방 안쪽을 보면 살짝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신발을 벗은 상태에서 햇볕으로 가열된 대리석 바닥 위를 총총거리며 열심히 휘둘러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젠장! 이런 식이면 우리 집에는 황금두꺼비가 있다고!


왕궁박물관은 국왕집무실을 중심으로 의전실, 접견실 등의 외부와 침실, 다이닝룸 등의 내부로 구분된다. 국왕집무실은 강렬한 붉은색 벽면에 화려한 유리 공예 모자이크로 꾸며져 있었다. 반면 침실 등은 소박하고 단아했다. 재미있는 건 국왕 비서 접견실에 외국 사절단의 선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다른 나라들 선물은 도자기 등 특산품이지만, 미국은 우주선 모형이었다. 생뚱맞아 보였다.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에어컨 바람 쐬며 커피도 마셨다. 그리고 2시, 더욱 날을 세운 햇살에도 불구하고 왓 씨앙통(Wat Xieng Thang)으로 향했다. 루앙프라방에 수많은 사원이 있지만, 그 가치가 남다른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루앙프라방으로 이름을 바꾸기 전 이 도시의 이름이 황금 도시란 뜻의 씨앙통이었다. 메콩 강과 칸 강이 만나는 곳에 있어 루앙프라방의 관문 역할을 했고, 왕실의 사원으로 대관식 등의 행사도 이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왓 씨앙통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은 대법전 뒷면에 있는 유리 공예 모자이크인 ‘삶의 나무(Tree of Life)’. 나뭇가지와 줄기, 뿌리가 각각 하늘과 땅, 지하를 표현해 우주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주고 나발이고, 너무 더워 익어버릴 지경이다. 후다닥 뛰쳐나와 메콩강 기슭의 그늘부터 찾았다.










이제 남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날씨가 너무 무덥고, 무엇보다 아내의 치통이 또다시 도졌다. 애들도 힘들다며 어서 숙소로 돌아가 텔레비전 만화나 보자고 아우성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걸음을 푸시(Phu Si)로 옮겼다. 신성한 산이란 뜻의 푸시는 루앙프라방 중앙에 위치해 전망이 뛰어나다. 특히 일몰 시간이 되면 메콩강과 칸강에 둘러싸인 도시의 풍경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도 빠질 수 없지 않겠나.


지친 몸을 이끌기 위해 카페에서 아이스커피와 레몬소다, 샌드위치를 먹었다. 푸시원정대 대장도 뽑았다. 가위바위보로 대장으로 선정된 동욱이는 신 나서 앞서 나갔다. 문제는 동호. 언제까지 가야 하냐며 볼멘소리를 내며 터벅터벅 걸어 올랐다.






다행히 높진 않았다. 10분 만에 도착했으니 산이라기보다 언덕이다. 그때 시각이 5시, 벌써 해 지는 쪽을 향해 자리를 잡은 관광객이 북적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불어나 6시쯤이 되어서는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들어찼다. 사람이 너무 많아 그 느낌이 반감되었지만, 푸시에서 내려다본 루앙프라방은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저녁을 먹고 9시 셔틀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씻고 눕자마자 아이들은 곯아떨어졌다. 수학여행으로 다져진 불굴의 근성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불가능한 하루였다. 어서 자자. 오늘 밤엔 맥주도 없다. 





 내역

 금액

 왕궁박물관 입장료

 30,000*2=60,000낍

 점심(coconut garden)

 512,000낍

 카페(le cafe ban vai sene)

 39,000낍

 왓 씨앙통 입장료

 20,000*2=40,000낍

 카페(le banneton)

 75,000낍

 푸시 입장료

 20,000*2=40,000낍

 저녁(카페 뚜이)

 138,000낍

 숙소

 47.57달러(308,560낍)

 총계

 1,212,560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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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바이디, 라오스2015. 1. 27. 22:56

[9월 6일] 메콩강이 흐르는 대로(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6시 30분, 아침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루앙프라방으로 넘어가는 날. 8시 40분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야 한다. 7시, 아침을 먹고 서둘러 짐을 챙겼다. 체크아웃하고 숙소 정문으로 나가니 미니버스가 벌써 대기 중이다.


버스는 한적했다. 좁은 버스를 타고 온종일 이동할 생각에 걱정이 많았는데 널찍하고 편하게 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웬걸, 우리를 태운 버스는 곧장 루앙프라방으로 향하지 않고 이 숙소, 저 숙소 들러 여행객을 계속 태우는 게 아닌가. 결국, 미니버스는 빈자리 하나 없이 꽉 들어찼고 우리는 맨 뒷자리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만선의 기쁨으로 흐믓해지기라도 한 걸까. 운전사는 갑자기 시계가게 앞에서 멈추더니 금박으로 반짝이는 손목시계를 하나 골라 차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시계라니, 무슨 영문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그리고 1시간쯤 갔을까. 이번에는 정비소에서 멈췄다. 차에서 내려 앞바퀴를 살피며 정비소 주인과 한참을 얘기하던 운전사는 급기야 승객들을 모두 내리게 했다. 멀미약을 먹고 잠들었던 아이들을 깨워 내려 보니, 앞바퀴 브레이크 패드를 교환하는 게 아닌가. 과연 이 버스가 루앙프라방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또 어디 고장 난 곳은 없는지, 괜스레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문제는 멀미약을 먹은 아이들이 잠에서 깨버렸다는 것. 앞으로 갈 길이 구만린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다행히 버스가 출발하자, 아이들도 다시 잠이 들었다. 아직은 멀미약의 효과가 남아 있나 보다.


그런데 1시간쯤 달리던 버스가 또 멈추는 게 아닌가. 이번엔 휴게소다. 하! 전략의 실패다. 처음부터 멀미약을 먹이는 게 아니었다. 바로 여기 휴게소에서 먹여 재웠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멍한 상태로 과자와 주스, 과일 등 주전부리를 집어 들었다.


20여 분을 쉰 버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산길에 접어들었다. 산허리를 감아 도는 꼬불꼬불한 비포장도로를 미니버스로 달리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나마 동호는 멀미약의 효과가 아직 남았는지 다시 잠이 들었지만, 동욱이는 잠도 못 이루고 메슥메슥하는 속을 부여잡고 계속 고통스러워 했다. 시원하게 한번 게워내고 나면 좀 편해지련만, 먹은 게 없어 그런지 토악질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비닐봉지에 얼굴을 파묻고 연신 웩웩거리며 헛구역질만 해대는 동욱이가 가엽고 안쓰럽다. 하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아이고, 맙소사! 기진맥진해서 탈진 상태에 이른 동욱이는 어느 산꼭대기에 있는 다음 휴게소에 이르러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라오스는 철도가 없는 나라다. 몇 해 전 메콩강을 이웃하는 태국에서 비엔티안 인근까지를 잇는 짧은 노선의 철도가 개통했다고 하지만, 그게 전부다. 


제국주의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는 침략국의 수탈 전략으로 철도가 발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겪으며 식량과 자원을 수탈하고 대륙 진출의 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일본의 전략으로 철도가 발달하게 되었다. 하지만 라오스는 사정이 다르다. 프랑스의 식민지였음에도, 대부분이 산악지대라는 이유로 전략적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제국주의 지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철도마저 개설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도로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다. 포장된 길이라고 해도 곳곳이 파이고, 구불구불 산길에 비포장도로도 많다. 그런 길로 버스를 타고 장시간 이동한다는 게 아이들에겐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방비엥에 들르지 말고 곧장 비행기로 루앙프라방으로 가면 어떨지, 고민스러웠다. 결국, 방비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고난의 길을 선택했고, 오늘 동욱이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산 정상 휴게소에서 한번 쉰 버스는 다시 두어 시간을 달렸고, 어느 고산마을 가게 앞에서 또 한 번 쉬었다. 그리고 또 달렸다. 도착할 듯 말듯, 수많은 고산마을을 지나쳐 오후 4시, 드디어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장작 7시간의 고된 이동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숙소까지 또 가야 한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르벨에어(Le Bel Air). 뚝뚝을 잡아타고 이동하니 또 한 시간이다. 끔찍하다. 





루앙프라방은 생각보다 컸다. 하긴 라오스의 전신인 란싼 왕국부터 1563년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이 나라의 수도였으니 방비엥과는 비할 바가 없겠다. 거칠 게 없는 햇볕과 파란 하늘, 그 아래 나지막이 놓인 붉은 지붕의 오랜 집들과 사원들. 강렬하고 고즈넉한, 자연과 삶의 아이러니랄까. 오랜 이동으로 정신이 몽롱하다.







숙소에 도착하지마자, 짐을 벗어 던지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메콩강의 지류인 칸강(Khan River) 인근에 자리 잡은 르벨에어는 이른바 ‘여행자거리’라고 불리는 중심가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대신 무료로 셔틀을 운영한다. 셔틀 출발 시각이 5시 30분. 몸은 지쳤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려면 어쩔 수 없다.


온종일 굶주린 우리는 한식집을 찾았다. 김치볶음밥도 먹고, 라면도 먹었다. 역시 김치와 라면이 최고다. 배불리 먹고,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마시고 있자니 비로소 마음에 평안이 찾아든다. 메콩강도 눈에 들어오고. 이제 보니 루앙프라방으로 왔던 오늘 하루가 꼭 메콩강을 빼닮았다. 어찌나 저렇게 느린지 말이다. 느리면 느린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그냥 저렇게 흘러가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나 보다. 메콩강이 흐르는 대로 루앙프라방을 즐겨야겠다.





9시, 다시 셔틀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루앙프라방에서의 첫날밤. 맑은 하늘은 간데없고 천둥 번개가 몰아쳤다.



내역 

금액 

 휴게소 간식

 20,000낍

 뚝뚝

 70,000낍

 저녁

 180,000낍

 커피

 20,000낍

 맥주, 주스

 25,000낍

 숙소

 47.57달러(380,560낍)

 총계

 695,560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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