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닭이나 라오스 닭이나, 새벽에 울어 젖히긴 매한가지다. 빛에 민감한 닭에게는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겠지만, 느지막이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 나로서는 영 마뜩잖은 일이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오니 무거운 듯 낮게 깔린 구름이 세상을 감싸고 있다. 잔뜩 머금은 빗방울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다.
방비엥 첫날 숙소인 타본숙리조트(Thavonsouk Resort)는 쏭강 바로 옆에 자리 잡아 풍광이 좋다. 특히 야외 식당에서 바라보는 쏭강의 경치는 석회암의 오랜 풍화작용으로 탄생한 카르스트 지형의 멋스러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최고였다. 덕분에 유자잼을 바른 바게트와 커피의 단출한 식사도 더없이 풍족했다.
쏭강의 풍경에 만족한 우리는 이곳에서 하루 더 묵을 요량으로 프런트 데스크를 찾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이미 예약이 꽉 차서 더는 받을 수 없다는 게 아닌가.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하루 더 묵을 수 있다고 했는데, 불과 하룻밤 사이에 예약이 꽉 찰 수 있는 것인지. 그러더니 대뜸 다른 리조트를 소개해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기 시작했다. 그쪽 지배인이 자기 친구라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반신반의하면서도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어 따라나섰다.
타본숙리조트 지배인이 앞장서 찾아간 곳은 빌라남송(Villa NamSomg)였다. 쏭강을 따라 타본숙리조트와 이웃해 있어 경치도 좋고 넌지시 둘러본 시설도 괜찮았다. 오케이. 여기서 하루 묶기로 하고 얼만지 물었다. 그랬더니 50달러란다. 타본속리조트에서는 35달러에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15달러를 더 내야 한다니. 그럴 순 없었다. 똑같이 35달러에 맞춰 달라고 했고, 난처한 표정을 몇 번 주고받은 끝에 40달러로 합의했다.
숙소를 바꿔 짐을 풀고, 동네 나들이에 나섰다. 우리의 목표는 일단 눈앞에 보이는 쏭강 위의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얼기설기 엮인 쇠줄과 엉성하게 깔린 널빤지만으로 모양새를 갖춘 다리는 콘크리트 다리에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걷고 싶은 매력이 가득했다.
남송브릿지(NamSong Bridge). 보기에는 엉성해도 통행세를 받는다. 걸어가면 4,000낍, 자전거는 6,000낍, 오토바이는 10,000낍이다. 방비엥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라 할 수 있는 블루라군으로 가는 길목이라 돈을 받는 것 같다. 아무튼 다리는 생각보다 튼튼했다. 흔들림도 거의 없고. 하긴 뚝뚝과 트럭도 오가는 길이니 그럴 수밖에.
다리 건너편은 이쪽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온통 여행자뿐이어서 이곳이 정말 라오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지만, 건너편은 그렇지 않았다. 논과 밭이 있고 소 떼가 지나다니는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었다. 한가로이 유영하며 동네 구석구석 살펴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사정이 달랐다. 날이 너무 더워 한걸음 뗄 때마다 어디까지 가야 하느냐고 아우성이다. 조금만 더 가면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며 어르고 달래보지만 소용없다. 물론 아이스크림 가게도 없다. 작은 가게가 있어 먹고 싶은 걸 고르라고 하니 껌을 고른다. 아이고, 껌이라니. 별수 없이 껌 하나씩 질겅질겅 씹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껌 하나의 약발은 30분에 지나지 않았다. 단물만 쏙 빼먹는 약삭빠른 녀석들 같으니라고!
점심을 먹고 자전거 대여점을 찾았다. 블루라군을 가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여기서 6km 정도 떨어진 블루라군을 가려면 자전거를 타던지 오토바이를 타야 한다. 아니면 뚝뚝을 타야 한다. 동욱이가 탈 수 있는 자전거만 있으면 동호는 내가 어떻게든 태우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어린이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 없다는 점. 어른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은 여럿이지만, 어린이 자전거는 없다. 아이들과 방비엥을 즐기는 건 정말 불가능하단 말인가.
그러다 딱 한 곳, 어린이 자전거가 있는 곳을 발견했다. 자전거가 조금 커 보이긴 했지만, 동욱이가 잘 타주길 바랐다. 최근 두발자전거를 타기 시작해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었던 터라 가능하리라 믿었다. 자전거를 길가로 빼고 브레이크와 페달을 점검한 후 안장을 최대한 낮췄다. 동욱이가 올라타자 발끝이 겨우 땅에 닿는다. 녀석도 큰 자전거가 부담되었는지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드디어 페달을 힘차게 밟고 출발! 그러나 시작부터 이리저리 비틀거리던 자전거는 곧 자리를 잡길 바라는 바람을 저버리고 그대로 꼬꾸라져 버렸다. 어깨를 다쳤는지 찡그리며 일어난 동욱이가 다가와 머쓱한 표정으로 조용히 말한다. 애나 어른이나, 넘어지면 아픈 것보다 창피한 게 더 문제다.
“왜 넘어졌는지 알아?”
“몰라.”
“브레이크가 고장 났어.”
“그랬구나. 어쩐지…….”
방비엥의 가장 큰 매력은 쏭강이다. 많은 사람이 쏭강에서 튜빙이나 카약을 즐긴다. 애들이 어린 탓에 우리는 슬로우보트를 선택했다. 카약보다 조금 크고 조그만 모터가 달린 배에 두 명씩 타고 한 시간가량 쏭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되돌아온다. 비용은 한사람 당 80,000낍. 어린이 할인은 없다.
동욱이와 나, 동호와 아내가 각각 한배에 올라탔다. 구명조끼까지 차려입었지만, 솔직히 무섭다. 애써 진정해보려 하는데 마음을 다잡기도 전에 배가 출발한다. ‘털털털털’ 모터 소리가 울리고 물살을 가로질러 배가 움직인다. 으악! 배가 너무 작다. 그에 비해 물살은 너무 세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배가 뒤집힐 것 같다. 양손으로 배를 꼭 움켜쥔다.
다행히 무서움은 이내 재미로 바뀌었다. 손을 뻗어 물살을 가르기도 하고 아내와 동호가 탄 배가 가까이 붙으면 물장난을 치기도 했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 놓인 쏭강의 풍경도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어느 정도 상류에 이르자 맥주를 마시며 튜빙과 카약을 즐기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크게 음악을 틀어 놓은 클럽도 있다. 음악에 맞춰 술을 마시며 춤을 추고 있는 무리로 가득했다. 그리고 세상에나! 물이 뿜어져 나오는 농구대라니! 저걸 한국에 들여오면 대박 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한때는 쏭강 주변의 술집들이 여행자들의 해방구였다고 한다. 과도한 음주와 마약으로 수많은 사건사고가 벌어졌고, 급기야 정부가 이들을 철거하고 규제하기 나섰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차분해졌다고 하는데, 젊음의 혈기가 어디 철거와 규제로 수그러들겠나 싶다. 지금 여기서 몸을 흔들고 있는 저 자유로운 젊은 영혼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존재다.
숙소로 돌아와 조금 뒹굴다 저녁을 먹을 채비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도 저녁은 한식이다. 아니, 정확히 라면이다. 여기까지 와서 라면을 먹는 게 억울하지만, 이게 다 입이 짧은 내 탓이다. 애들도 라면이라니 무조건 ‘콜!’이다. 한국인 식당이 여럿 있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먹고 싶은 걸 먹어 기분이 좋아진 아이들은 돌아오는 길에 가게마다 “싸바이디” 인사를 건넸다.
항목 |
금액 |
다리 통행료 |
16,000낍 |
간식(껌, 물 등) |
7,000낍 |
지도 |
25,000낍 |
슬리퍼 |
20,000낍 |
점심 |
154,000낍 |
슬로우보트 |
160,000낍 |
저녁 |
125,000낍 |
라오비어 등 |
25,000낍 |
숙박비 |
320,000낍 |
합계 |
852,000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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