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7일] 파방을 찾아라(루앙프라방 왕궁박물관, 왓 씨앙통, 푸시)
불이라도 난 건가. 새벽부터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설마하니 진짜 불이 난 건 아닐 테고. 화재경보기가 고장 난 것 같은데, 왜 안 끄는 건지. 참다못해 밖으로 나와보니 글쎄, 메미 소린지 새 소린지, 아무튼 자연의 소리다. 꾀꼬리 소리에 잠이 깨고 조식 룸서비스로 산듯하게 하루를 맞이하는 건 홈쇼핑 속 여행상품에서나 나오는 얘긴가 보다.
아침 10시, 일찌감치 셔틀을 타고 시내로 나왔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왕궁박물관. 여행자거리의 중심에 있기도 하지만, 루앙프라방이 라오스 최초 독립국가였던 란싼왕국(Lan Xang Kingdom)의 수도였단 점에서 왠지 모를 의무감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루앙프라방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황금불상, 파방(Pha Bang)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왕궁박물관으로 걷는데, 사람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날씨가 너무 무더운 것이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쏟아지는 햇살은 날 것 그대로였다. 100미터도 채 걷지 못하고 의자에 주저앉았고, 힘들다는 아이들의 아우성에 사탕이 투하되었다.
왕궁박물관 입구로 들어가니, 오른쪽으로 호 파방(Ho Pha Bang)이 있다. 파방을 안치하기 위해 만든 법당으로 황금색의 화려한 건물이다. 아직 파방을 옮겨놓진 않았다.
호 파방을 지나 중앙으로 늘어선 가로수 길을 따라가면 왕궁이 나온다. 1975년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되면서 왕정이 폐지되었고, 왕궁은 박물관으로 변했다. 라오스의 마지막 왕인 씨싸왕 왓타나 왕(King Sisavang Vatthana)은 라오 공산당에 체포되어 가택연금을 당했고, 저항운동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비밀수용소로 유배되어 사망했다. 왕궁박물관 안에는 이들 왕과 왕비, 그리고 왕세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동욱이와 동호는 초상화를 보고 불쌍하다며 도대체 왜 쫓겨났느냐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왕궁박물관에는 무릎이 보이는 반바지나 치마를 입으면 입장이 제한된다. 신발과 모자도 벗어야 하고, 당연히 사진 촬영도 금지다.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불상, 파방(Pha Bang)때문이다. 순금으로 만들어진 황금불상인 파방은 국가의 수호신으로 여겨지며 국왕이 정통성을 의미했다고 한다. 라오스 전신인 란싼왕국 파응움 왕이 크메르 제국의 공주와 결혼하며 불교를 받아들였는데, 그때 선물로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수도의 이름도 루앙프라방으로 바뀐 것이다.
파방은 왕궁박물관 오른쪽 맨 마지막 방에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직접 들어갈 수는 없고, 건물 바깥에서 오른쪽 두 번째 방 안쪽을 보면 살짝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신발을 벗은 상태에서 햇볕으로 가열된 대리석 바닥 위를 총총거리며 열심히 휘둘러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젠장! 이런 식이면 우리 집에는 황금두꺼비가 있다고!
왕궁박물관은 국왕집무실을 중심으로 의전실, 접견실 등의 외부와 침실, 다이닝룸 등의 내부로 구분된다. 국왕집무실은 강렬한 붉은색 벽면에 화려한 유리 공예 모자이크로 꾸며져 있었다. 반면 침실 등은 소박하고 단아했다. 재미있는 건 국왕 비서 접견실에 외국 사절단의 선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다른 나라들 선물은 도자기 등 특산품이지만, 미국은 우주선 모형이었다. 생뚱맞아 보였다.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에어컨 바람 쐬며 커피도 마셨다. 그리고 2시, 더욱 날을 세운 햇살에도 불구하고 왓 씨앙통(Wat Xieng Thang)으로 향했다. 루앙프라방에 수많은 사원이 있지만, 그 가치가 남다른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루앙프라방으로 이름을 바꾸기 전 이 도시의 이름이 황금 도시란 뜻의 씨앙통이었다. 메콩 강과 칸 강이 만나는 곳에 있어 루앙프라방의 관문 역할을 했고, 왕실의 사원으로 대관식 등의 행사도 이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왓 씨앙통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은 대법전 뒷면에 있는 유리 공예 모자이크인 ‘삶의 나무(Tree of Life)’. 나뭇가지와 줄기, 뿌리가 각각 하늘과 땅, 지하를 표현해 우주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주고 나발이고, 너무 더워 익어버릴 지경이다. 후다닥 뛰쳐나와 메콩강 기슭의 그늘부터 찾았다.
이제 남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날씨가 너무 무덥고, 무엇보다 아내의 치통이 또다시 도졌다. 애들도 힘들다며 어서 숙소로 돌아가 텔레비전 만화나 보자고 아우성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걸음을 푸시(Phu Si)로 옮겼다. 신성한 산이란 뜻의 푸시는 루앙프라방 중앙에 위치해 전망이 뛰어나다. 특히 일몰 시간이 되면 메콩강과 칸강에 둘러싸인 도시의 풍경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도 빠질 수 없지 않겠나.
지친 몸을 이끌기 위해 카페에서 아이스커피와 레몬소다, 샌드위치를 먹었다. 푸시원정대 대장도 뽑았다. 가위바위보로 대장으로 선정된 동욱이는 신 나서 앞서 나갔다. 문제는 동호. 언제까지 가야 하냐며 볼멘소리를 내며 터벅터벅 걸어 올랐다.
다행히 높진 않았다. 10분 만에 도착했으니 산이라기보다 언덕이다. 그때 시각이 5시, 벌써 해 지는 쪽을 향해 자리를 잡은 관광객이 북적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불어나 6시쯤이 되어서는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들어찼다. 사람이 너무 많아 그 느낌이 반감되었지만, 푸시에서 내려다본 루앙프라방은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저녁을 먹고 9시 셔틀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씻고 눕자마자 아이들은 곯아떨어졌다. 수학여행으로 다져진 불굴의 근성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불가능한 하루였다. 어서 자자. 오늘 밤엔 맥주도 없다.
내역 |
금액 |
왕궁박물관 입장료 |
30,000*2=60,000낍 |
점심(coconut garden) |
512,000낍 |
카페(le cafe ban vai sene) |
39,000낍 |
왓 씨앙통 입장료 |
20,000*2=40,000낍 |
카페(le banneton) |
75,000낍 |
푸시 입장료 |
20,000*2=40,000낍 |
저녁(카페 뚜이) |
138,000낍 |
숙소 |
47.57달러(308,560낍) |
총계 |
1,212,560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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