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바이디, 라오스2014. 11. 13. 23:56

[9월 4일]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라오스 방비엥)


도마뱀이었다. 어젯밤 자리에 누우려고 불을 끄려는 순간 불현듯 출몰한 녀석. 두 쌍의 다리와 아랫배, 심지어 꼬리 끝까지 잔뜩 힘을 주고 천정에 딱 달라붙어 있던 녀석은 내가 자기를 발견한 것을 직감이라도 했는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어디로 갔을까. 혹시라도 잠든 내 몸을 누비고 다니는 건 아닐지. 자리에 누웠지만, 불안해서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다. 다시 불을 켰다. 녀석에게 내가 잠들지 않았음을 알려야 했다. 그러니 허튼수작 말고 조용히 짱박혀 있으라고.


라오스에서 도마뱀만큼 흔한 동물도 없다. 집집이 벽면 가득 도마뱀이 기어 다니기도 한다. 동욱이와 동호에게 “저기 좀 봐. 도마뱀이야. 어때? 귀엽지?”라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런데 방안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아무리 작고 해가 없는 녀석이라도 파충류가 아닌가. 툭 튀어나온 두 눈에 혀를 날름거리며 축축한 표피를 가진 파충류와 함께 잠을 자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하얗게 지새고 말았다. 젠장! 차라리 눈에 띄지나 말지, 하필 불 끄고 자려는 순간 나타날 게 뭐람. 이게 다 의도치 않게 숙소를 옮긴 후과라고 생각하니 이만저만 속상한 게 아니었다. 


서둘러 아침 식사를 마치고 숙소부터 옮겼다. 미리 봐둔 곳은 빌라 방비엥 리버사이드(Villa Vangvieng Riverside). 남송브릿지 넘기 바로 직전에 있는 곳이다. 







이번에 숙소를 고른 기준은 수영장이다. 쏭강에서 튜빙이나 카약을 즐기지 못하는 대신 수영장에서 실컷 놀 작정이었다. 그래서 어제와 그제 오가며 눈여겨봐 둔 곳이 바로 빌라 방비엥 리버사이드다. 그 바로 맞은편에 있는 리버사이드 부티크 리조트(Riverside Bouti이que Resort)도 눈에 띄었지만, 너무 비싸다. 시설이 아주 좋아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빌라 방비엥 리버사이드는 아고다(www.agoda.com)에서 57.50달러. 이것도 약간 비싼 감이 없지 않지만, 수영장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 흔쾌히 결정했다.




애초 라오스로 떠나면서 첫날 빼고는 숙소를 예약 하지 않았다. 현지에서 돌아다니며 그때그때 잡을 요량이었다. 마음에 드는 숙소가 있으면 들어가서 구경하고 가격을 알아봤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비교했다. 주로 트립어드바이저(www.tripadvisor.co.kr))와 아고다, 익스피디아(www.expedia.co.kr)를 이용했다. 여행하기 참 좋은 세상이다.


숙소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수영장이 눈에 띈다. 쏭강과 카르스트 지형의 멋드러진 산들을 배경으로 한 야외수영장이다. 와우, 멋지다!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내 생에 이렇게 멋진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게 될 줄이야. 황송하기까지 하다. 애들도 신이 나서 얼른 옷부터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입수했다. 동욱이는 구명조끼를 입고 동호는 튜브를 찼다. 물이 깊어서 걱정이었지만, 잘 논다. 부대끼는 사람 단 한 명도 없이, 멋드러진 풍경을 배경까지, 하늘 아래 이런 수영장이 어디 또 있을까.









해가 중천을 넘긴지도 한참이나 지났지만, 애들은 밥 먹을 생각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밖에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 오기로 했다. 팬케익과 샌드위치, 오렌지쥬스를 사들고 돌아오는데 한 꼬마 아이가 앞서 지나간다. 동욱이 나이쯤 되었을까. 윗옷을 벗은 채, 바지춤이 엉덩이까지 내려와 있었다. 약간 망설였지만, 뒷모습이니 괜찮겠다 싶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아뿔싸! 갑자기 뒤를 돌아보는게 아닌가. 이미 눌러진 셔터를 무를 수도 없고, 어쩌나. 엉겁결에 “쏘리”라고 내뱉었지만, 영 마음에 걸린다.





라오스에 오면서 사진을 많이 찍고 싶었다. 렌즈도 장만하고 삼각대도 구입했다. 그런데 사진 찍는 게 쉽지 않다. 무엇보다 사람을 찍는 게 그렇다. 오리엔탈리즘이랄까. 카메라 렌즈에서 우월감과 동정심을 걷어낼 수 없다. 머리로는 그러지 말자고 되뇌지만, 자꾸 비교하게 된다. 때로는 연민하고 심지어 안심하며, 구경꾼의 시각으로 그들을 타자화시킨다.





수영장에서 실컷 놀고 방으로 들어와 며칠 묵혀둔 빨래를 했다. 문제는 널어둘 곳이 없다는 점. 하는 수 없이 노끈을 사와 방 안을 가로질러 빨랫줄을 설치했다. 벽에 박힌 못이 없어 커튼 봉을 이용해 가까스로 빨래를 널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럴수가. 젖은 빨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커튼 봉이 부러져 버렸다. 이걸 어쩐다. 자진 신고해야 할지 모른 척해야 할지. 약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남은 노끈으로 부러진 봉을 묶고 대충 수습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설마 나중에 발견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진 않겠지.


온종일 제대로 먹은 것도 없이 물놀이에 전념한 탓에 해가 지기도 전에 허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배를 두드리며 돌아오는데, 점입가경이라더니 이번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 주먹만 한 귀뚜라미가 방에서 파드닥대며 날아다니는 게 아닌가. 차라리 조용히 천장에 붙어 있는 도마뱀이 낫지, 저렇게 요란뻑적지근하게 나부대는 귀뚜라미라니. 혹시 바퀴벌레인가. 가뜩이나 너무 커서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생각이 바퀴벌레에게까지 미치니 소름이 돋아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얼른 수건을 집어 들고 귀뚜라미에게 돌진, 무차별적으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침대를 이리저리 밀어젖히고 수없이 사방을 난타한 끝에 겨우 귀뚜라미를 잡을 수 있었다. 덕분에 커튼 봉에 이어 침대 다리가 하나 부러졌다. 겨우 아귀를 맞춰 침대를 올려 얹으니 다행히 무너지진 않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체크아웃하자마자 멀리 떠야겠다.


잠자리에 들며 동욱이에게 물었다. 대체 뭣 하러 이리 멀리 와서 고생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서울에도 수영장은 많은데 말이다.


“동욱아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뭐가 제일 좋았어?”

“오늘 수영한 거.”

“보트 탄 것 보다 수영한 게 더 좋아?”

“응.”커히


심보선 시집을 한 권 들고 와서 읽고 있다. 오늘 마음에 남는 시는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다. 낮에 마주한, 그 아이가 다시 떠오른다.


그때 하늘 아래 벗은 바지 모양

누추하게 구겨진 생은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였다

장대하고 거룩했다





내역 

금액 

 숙소

57.50$(460,000낍)

 점심(팬케익, 치즈케익, 치킨샌드위치, 오렌지쥬스2, 아이스커피2)

145,000낍

 빨랫줄

10,000낍 

 저넉(불닭볶음, 계란말이, 공기밥)

124,000낍

 라오맥주2

20,000낍

 합계

759,000낍


Posted by alternative
싸바이디, 라오스2014. 10. 17. 12:50


한국 닭이나 라오스 닭이나, 새벽에 울어 젖히긴 매한가지다. 빛에 민감한 닭에게는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겠지만, 느지막이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 나로서는 영 마뜩잖은 일이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오니 무거운 듯 낮게 깔린 구름이 세상을 감싸고 있다. 잔뜩 머금은 빗방울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다. 



방비엥 첫날 숙소인 타본숙리조트(Thavonsouk Resort)는 쏭강 바로 옆에 자리 잡아 풍광이 좋다. 특히 야외 식당에서 바라보는 쏭강의 경치는 석회암의 오랜 풍화작용으로 탄생한 카르스트 지형의 멋스러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최고였다. 덕분에 유자잼을 바른 바게트와 커피의 단출한 식사도 더없이 풍족했다.



쏭강의 풍경에 만족한 우리는 이곳에서 하루 더 묵을 요량으로 프런트 데스크를 찾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이미 예약이 꽉 차서 더는 받을 수 없다는 게 아닌가.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하루 더 묵을 수 있다고 했는데, 불과 하룻밤 사이에 예약이 꽉 찰 수 있는 것인지. 그러더니 대뜸 다른 리조트를 소개해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기 시작했다. 그쪽 지배인이 자기 친구라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반신반의하면서도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어 따라나섰다.


타본숙리조트 지배인이 앞장서 찾아간 곳은 빌라남송(Villa NamSomg)였다. 쏭강을 따라 타본숙리조트와 이웃해 있어 경치도 좋고 넌지시 둘러본 시설도 괜찮았다. 오케이. 여기서 하루 묶기로 하고 얼만지 물었다. 그랬더니 50달러란다. 타본속리조트에서는 35달러에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15달러를 더 내야 한다니. 그럴 순 없었다. 똑같이 35달러에 맞춰 달라고 했고, 난처한 표정을 몇 번 주고받은 끝에 40달러로 합의했다.





숙소를 바꿔 짐을 풀고, 동네 나들이에 나섰다. 우리의 목표는 일단 눈앞에 보이는 쏭강 위의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얼기설기 엮인 쇠줄과 엉성하게 깔린 널빤지만으로 모양새를 갖춘 다리는 콘크리트 다리에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걷고 싶은 매력이 가득했다.


남송브릿지(NamSong Bridge). 보기에는 엉성해도 통행세를 받는다. 걸어가면 4,000낍, 자전거는 6,000낍, 오토바이는 10,000낍이다. 방비엥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라 할 수 있는 블루라군으로 가는 길목이라 돈을 받는 것 같다. 아무튼 다리는 생각보다 튼튼했다. 흔들림도 거의 없고. 하긴 뚝뚝과 트럭도 오가는 길이니 그럴 수밖에.





다리 건너편은 이쪽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온통 여행자뿐이어서 이곳이 정말 라오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지만, 건너편은 그렇지 않았다. 논과 밭이 있고 소 떼가 지나다니는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었다. 한가로이 유영하며 동네 구석구석 살펴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사정이 달랐다. 날이 너무 더워 한걸음 뗄 때마다 어디까지 가야 하느냐고 아우성이다. 조금만 더 가면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며 어르고 달래보지만 소용없다. 물론 아이스크림 가게도 없다. 작은 가게가 있어 먹고 싶은 걸 고르라고 하니 껌을 고른다. 아이고, 껌이라니. 별수 없이 껌 하나씩 질겅질겅 씹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껌 하나의 약발은 30분에 지나지 않았다. 단물만 쏙 빼먹는 약삭빠른 녀석들 같으니라고!



점심을 먹고 자전거 대여점을 찾았다. 블루라군을 가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여기서 6km 정도 떨어진 블루라군을 가려면 자전거를 타던지 오토바이를 타야 한다. 아니면 뚝뚝을 타야 한다. 동욱이가 탈 수 있는 자전거만 있으면 동호는 내가 어떻게든 태우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어린이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 없다는 점. 어른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은 여럿이지만, 어린이 자전거는 없다. 아이들과 방비엥을 즐기는 건 정말 불가능하단 말인가.




그러다 딱 한 곳, 어린이 자전거가 있는 곳을 발견했다. 자전거가 조금 커 보이긴 했지만, 동욱이가 잘 타주길 바랐다. 최근 두발자전거를 타기 시작해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었던 터라 가능하리라 믿었다. 자전거를 길가로 빼고 브레이크와 페달을 점검한 후 안장을 최대한 낮췄다. 동욱이가 올라타자 발끝이 겨우 땅에 닿는다. 녀석도 큰 자전거가 부담되었는지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드디어 페달을 힘차게 밟고 출발! 그러나 시작부터 이리저리 비틀거리던 자전거는 곧 자리를 잡길 바라는 바람을 저버리고 그대로 꼬꾸라져 버렸다. 어깨를 다쳤는지 찡그리며 일어난 동욱이가 다가와 머쓱한 표정으로 조용히 말한다. 애나 어른이나, 넘어지면 아픈 것보다 창피한 게 더 문제다.


“왜 넘어졌는지 알아?”

“몰라.”

“브레이크가 고장 났어.”

“그랬구나. 어쩐지…….”


방비엥의 가장 큰 매력은 쏭강이다. 많은 사람이 쏭강에서 튜빙이나 카약을 즐긴다. 애들이 어린 탓에 우리는 슬로우보트를 선택했다. 카약보다 조금 크고 조그만 모터가 달린 배에 두 명씩 타고 한 시간가량 쏭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되돌아온다. 비용은 한사람 당 80,000낍. 어린이 할인은 없다.


동욱이와 나, 동호와 아내가 각각 한배에 올라탔다. 구명조끼까지 차려입었지만, 솔직히 무섭다. 애써 진정해보려 하는데 마음을 다잡기도 전에 배가 출발한다. ‘털털털털’ 모터 소리가 울리고 물살을 가로질러 배가 움직인다. 으악! 배가 너무 작다. 그에 비해 물살은 너무 세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배가 뒤집힐 것 같다. 양손으로 배를 꼭 움켜쥔다. 


다행히 무서움은 이내 재미로 바뀌었다. 손을 뻗어 물살을 가르기도 하고 아내와 동호가 탄 배가 가까이 붙으면 물장난을 치기도 했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 놓인 쏭강의 풍경도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어느 정도 상류에 이르자 맥주를 마시며 튜빙과 카약을 즐기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크게 음악을 틀어 놓은 클럽도 있다. 음악에 맞춰 술을 마시며 춤을 추고 있는 무리로 가득했다. 그리고 세상에나! 물이 뿜어져 나오는 농구대라니! 저걸 한국에 들여오면 대박 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한때는 쏭강 주변의 술집들이 여행자들의 해방구였다고 한다. 과도한 음주와 마약으로 수많은 사건사고가 벌어졌고, 급기야 정부가 이들을 철거하고 규제하기 나섰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차분해졌다고 하는데, 젊음의 혈기가 어디 철거와 규제로 수그러들겠나 싶다. 지금 여기서 몸을 흔들고 있는 저 자유로운 젊은 영혼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존재다.


숙소로 돌아와 조금 뒹굴다 저녁을 먹을 채비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도 저녁은 한식이다. 아니, 정확히 라면이다. 여기까지 와서 라면을 먹는 게 억울하지만, 이게 다 입이 짧은 내 탓이다. 애들도 라면이라니 무조건 ‘콜!’이다. 한국인 식당이 여럿 있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먹고 싶은 걸 먹어 기분이 좋아진 아이들은 돌아오는 길에 가게마다 “싸바이디” 인사를 건넸다.







항목 

 금액

다리 통행료

16,000낍 

간식(껌, 물 등)

7,000낍 

지도

25,000낍 

슬리퍼

20,000낍 

점심

154,000낍 

슬로우보트

160,000낍 

저녁

125,000낍 

라오비어 등

25,000낍 

숙박비

320,000낍 

합계

852,000낍 




Posted by alternative
싸바이디, 라오스2014. 9. 26. 15:58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우기를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첫날부터 이렇게 비가 내리다니. 절망스러웠다. 그래도 한국의 장마처럼 온종일 내리지는 않는다고 하니 어서 개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창문으로 빼꼼히 바라본 라오스의 아침은 저녁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른 시간이지만 상점은 모두 문을 열었고, 거리를 달리는 수많은 오토바이와 자전거도 분주했다. 야간노동과 밤문화에 익숙해져 잊고 있었던 아침이랄까. 어서 그 풍경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짐을 꾸려 밖으로 나섰다. 아이들은 우비를 챙겨 입었고 아내와 나는 우산 하나를 받쳐 들었다.



 


우리가 묵은 숙소인 ‘도우앙찬 플라자 호텔(Douangchanplaza Hotel)’은 이른바 ‘여행자 거리’라고 불리는 중심가와 다소 떨어져 있다. 걸어서 30여 분 정도. 도시 구경도 할 겸 쉬엄쉬엄 걸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숙소에서 나오자 곳곳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뚝뚝’이 물려와 “헤이, 뚝뚝?”이라며 호객 행위를 벌인다. 초행길이 아니니 알아서 잘 갈 수 있다는 듯 우쭐하며 “노 땡규”라고 대답했다. 지도를 펼쳐 놓고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호기로운 개척자 코스프레를 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문제는 길이다. 아니 캐리어다. 각자 둘러맨 배낭 4개 만으로는 모든 짐을 넣을 수 없어 여행용 캐리어 가방을 하나 가져왔는데, 울퉁불퉁하고 여기저기 물이 고인 길이라 도무지 쉽게 끌고 갈 수 없다. 게다가 아이들은 어찌나 꾸물꾸물하던지. 무거운 캐리어를 주체하지 못한 채 비를 홀딱 맞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호기롭기는커녕 우스꽝스러울 게 분명했다. 아내도 같은 마음이었던지 그냥 ‘뚝뚝’을 타자고 했다. 


결국 ‘뚝뚝’을 잡아타고 ‘여행자 거리’로 이동했다. 타고 보니 생각보다 먼 거리였고, 걸어왔으면 참 처량했겠구나 싶었다. 현명한 결정을 내려 다행이라 위안하며 운전사에게 물었다.


“땡큐. 하우 머치?”

“피프티 싸우전드 낍”

“피프틴?”

“노, 피프티”


5만 낍이라니. 순간 우리 돈 5만 원이 연상되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침착해 하며 머릿속 계산기를 돌리는데, ‘5만을 8로 나누면, 8*6에 48이고, 2가 남으니….’ 으악, 내가 이리도 수에 약했단 말인가. 바가지를 덤터기로 쓰는 것이 확실한 것 같은데 대화는커녕 계산도 안 되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순순히 5만 낍을 내고 돌아서니 앞으로 돈 쓸 일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라오스 화폐 단위는 낍(kip)이다. 대략 8천낍이 1달러정도, 원화로 치면 천원꼴이다. 화폐 가치가 너무 낮아 자칫 큰 돈을 쓰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최소 화폐 단위는 천낍이고(오백낍짜리도 있다고 하는데 못봤다.) 오만낍까지 유통된다. 특이하게 동전은 없다. 웬만한 호텔이나 식당에서는 달러나 태국 돈 밧(THB)도 받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폰트레블(www.laokim.com)’. 라오스 현지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다. 한국의 사회적기업인 ‘착한여행(www.goodtravel.kr)’과 연계해 현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출발 시간은 2시, 가격은 1인당 5만낍이다. 방비엥까지 버스비가 5만낍인데, 시내에서 10분도 채 못 탄 뚝뚝이 5만낍이라니! 다시 한 번 분통이 터진다.


방비엥은 카약이나 짚라인, 튜빙과 같은 액티비티가 유명한 곳이다. 문제는 8살 동욱이와 5살 동호가 아직 어려서 이런 체험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느냐이다. 그래서 우리 애들도 그런 액티비티를 할 수 있을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짚라인이나 튜빙은 힘들 것 같고, 용감한 어린이라면 카약 정도는 탈 수 있을 거라고 답했다. 그러자 동호가 엄마에게  다가가 뒷엣말로 조용이 속삭인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동호가 좋다.


“나, 겁 많은데.”


내친김에 오늘밤 숙소까지 예약하고 맞은편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저렴하고 친절해서 현지인에게 인기가 많다고 여행책에 소개된 식당이었는데, 친절은 잘 모르겠고 저렴은 하더라. Sticky Rice 5천낍, Lao Traditionnal Noodle Soup 2만낍, Fried Meat Ball 만낍, 모두 3만5천낍에 점심을 해결했다. 





근처 커피집에서 차도 한 잔 마시고 다시 폰트레블로 와서 방비엥으로 가는 미니버스에 올랐다.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는 VIP버스(대형버스)와 미니버스(15인승), 두 종류가 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VIP버스를 탈 수도 있고 미니버스를 탈 수도 있다고 한다.


비가 오고 멈추길 몇 차례, 수많은 마을을 지나고 얼마나 달렸을까, 차가 멈춘다. 휴게소에 도착한 것이다. 휴게소라고 해봐야 길가에 있는 작은 가게 하나가 전부다. 멀미약을 먹고 꾸벅꾸벅 졸다 깬 아이들도 일어나 과자 하나씩을 집어 들었다. 재미있는 건, 화장실이 유료라는 점. 1인당 천낍을 내야 용변을 볼 수 있다.










다시 한참을 달려 5시 30분, 드디어 방비엥에 도착했다. 방비엥은 비엔티안에 비하면 훨씬 작은 도시다. 아니 마을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겠다. 거리상으로는 154km에 불과하지만(대략 서울-대전 거리) 도로 사정도 안 좋고, 무엇보다 애써 빨리 가려 하지 않기 때문에 3시간 반이 걸렸다. 소 떼가 지나가면 비켜줘야 했고, 사고난 차가 있으면 또 멈춰서 기다려야 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걸어가는데 한국인 식당이 눈에 띈다. 요새 글을 읽기 시작한 동욱이가 제일 먼저 반겼다. 자연스럽게 저녁은 한식으로 먹기로 하고 서둘러 숙소로 발길을 재촉했다.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온 아이들이 급격하게 지치기 시작했다.


불과 이틀 만에 먹는 한식은 꽤 반가웠다. 단, 너무 비싸다는 게 함정. 된장찌개와 두부김치, 계란말이를 먹고 거금 10만4천낍을 냈다. 점심에 비하면 무려 3개배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어젯밤의 염원이었던 맥주를 샀다. 라오스를 대표하는 라오 맥주(Beer Lao). 체코 맥주 기술로 만들어졌고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한다. 술을 좋아하지 않으니 자세한 맛은 잘 모르겠지만, 무덥고 습한 하루를 보내고 마시는 라오 맥주 한 병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고 행복했다. 이제 방비엥까지 왔으니, 당분간 이동은 없다. 이곳에서 며칠 묵으며 마음껏 놀자. 






<오늘의 결산>

항목 

 금액

뚝뚝

 50,000낍 

점심

 35,000낍 

커피숍

 20,000*2(커피)+20,000*2(오렌지쥬스)=80,000낍

버스(방비엥)

 50,000*4=200,000낍 

휴게소

 1,000*4(화장실)+10,000*2(과자)+6,000(음료수)=30,000낍

저녁

 104,000낍 

간식

 20,000*2(맥주)+6,000(음료수)=46,000낍 

숙소

 35$(280,000낍)

합계

 825,000낍




Posted by alternative
싸바이디, 라오스2014. 9. 25. 16:51
온 집안이 난장판이다. 어젯밤까지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여행 짐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아내와 두 아들 녀석들도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실은 내 마음이 더 난장판이다. 출발 하루 전날인 어젯밤,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충만한 밤을 보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호루라기 하나가 우리 여행을 이렇게 망칠 줄은 정말 몰랐다.

 

며칠 전부터 동호가 호루라기를 사달라고 했다. 그래서 하나를 사 줬다. 빨간색이 예쁜 호루라기였다. 동호도 마음에 드는지 연신 불어대며 좋아했다. 그런데 문제는 저녁에 부모님을 뵙고 돌아오던 길에 벌어졌다. 동호가 호루라기를 두고 왔다며 다시 돌아가자고 울며불며 고집을 피웠다. 내가 마지못해 하나 더 사주겠다고 하자, 온종일 신경이 날카롭던 아내가 대뜸 자기 물건 못 챙겨서 벌어진 일이니 절대 사줄 수 없다고 응수했다. 아니, 다섯 살짜리 아이가 얼마나 자기 물건을 잘 챙길 수 있다고 그러는지, 값나가는 물건도 아니고 ‘꼴랑’ 오백원짜리 호루라기가 아닌가. 나는 어이가 없어 집으로 돌아오는 즉시 여행이고 뭐고 꼴도 보기 싫어 자리에 누워 버렸다.

 

어젯밤 일을 떠올리며 이러다간 필시 여행 가서도 '주구장창' 싸우고만 돌아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기다 말고 습관처럼 페이스북을 들여다본다. 아내가 지난 새벽 2시에 글을 남겼다. 미안한 건 또 내 몫이다.

 

“12일, 결코 짧지 않은 여행을 앞두고 도진 몹쓸 불안증. 잠자면 큰일 날 것처럼…. 출근해서 출국 전까지 해야 할 일들을 분초를 가르며 줄 세우고, 내가 있으나 마나 해결되지 않을 업무들조차 걱정하고 염려하다 이쯤 되면 병은 아닐까 싶어 또 걱정을 업는다. 숨이 가빠졌다 심장이 벌컥거리다 유난히 내 불안과 곤두선 신경 덕에 오늘 하루 찬물 한 바가지씩 쏟긴 남편과 아이들. 예민함은 왜 늘 나를 바라보기보다 외부로 향할 때가 더 많은지. 별 준비 없이 가는 라오스, 서로 많이 사랑하고 아끼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간이면 좋겠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나머지 짐을 다 꾸린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내와 두 아들 녀석을 흔들어 깨웠다. 

 

“자기야, 얘들아, 어서 일어나. 오늘 라오스 가는 날이야!”

 

라오스로 가는 항공편은 생각보다 많다. 그중 직항은 라오항공과 진에어 두 개. 라오항공은 일주일에 네 번(화, 목, 금, 토요일 10시 40분) 인천공항을 출발하고, 진에어는 일주일에 두 번(월, 금요일 19시 20분) 출발한다. 우리는 요금이 가장 저렴한 쪽으로 알아봤고, 9월 1일 월요일에 출발해서 9월 12일 금요일에 돌아오는 진에어를 선택했다. 무려 12일간의 여행, 38년 만에 가장 빠르다는 추석 연휴에 미뤄둔 여름휴가를 한꺼번에 몰아 쓴 덕에 가능했다.

 

온 가족이 배낭 하나씩 둘러메고 집을 나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4시. 느긋하게 탑승수속 받고 출국심사대를 벗어나자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면세점이 펼쳐진다. 여행을 소비로 시작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미리 사둔 아내 선글라스와 카메라 렌즈 하나를 집어 들었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치히로 엄마, 아빠처럼 곧 돼지가 되어버리진 않을지 모르겠다.

 

서둘러 127번 탑승게이트를 찾아 이동, 라오스 비엔티안행 LJ015편 비행기에 탑승했다. 저가항공이라 그런지 탑승게이트도 멀고 비행기 좌석도 좁다. 바로 코앞이 앞사람 머리다. 이렇게 옴짝달싹도 못한 채 5시간 20분을 날아가야 한다니. 그래도 뭐, 싼값에 항공권을 끊을 수 있어 좋다. 라오스는 9월까지 우기가 이어져 지금은 여행 비수기다. 항공권도 성수기보다 조금 싼 편인데, 대략 40만 원대. 그런데 우리는 운 좋게도 331,900원에 끊었다. 몇 날 며칠 눈팅만 하다 8월 20일 예약을 하려고 홈페이지를 열었더니 갑자기 10만 원이나 뚝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수요일에 항공권이 뚝 떨어진다더니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다.





7시 20분.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한다. 서서히 움직이던 비행기가 갑자기 굉음을 내며 속도를 높인다. 비행기가 이륙을 결심한 것이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날개 위, 아래의 압력 차이로 생기는 약력(揚力) 때문이다. 이를 위해 비행기는 일정 정도의 속도에 도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속도를 넘긴 비행기는 설사 비행기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일단 날아야 보다한다. 비상은 일정한 도움닫기와 단 한 번의 결심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비행기가 뜨자 심장이 쫄깃해진다. 일상을 휘감고 있던 중력에서 벗어나는 일탈의 순간 느낄 수 있는 쾌감이다. 하지만 쾌감도 잠시, 좁은 항공기 안에서 5시간 이상 앉아 있어야 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금세 곯아떨어졌다. 나 역시 얼마나 졸았을까. 한참이 지나 기내 방송에 잠이 깼다. 베트남 상공을 날고 있다며 20분 후 라오스 왓따이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란다. 좁은 창문을 통해 저 멀리 수없이 작은 불빛들이 반짝인다.

 

현지시각 10시 40분(라오스와의 시차는 두 시간), 비행기는 무사히 왓따이 공항에 도착했다. 후텁지근한 더위와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우리를 제일 먼저 반긴다. 간단한 입국심사(라오스는 비자 없이 15일간 체류할 수 있다.)를 마치고 나오자 미리 예약해둔 숙소에서 나온 분이 우리를 픽업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밤늦게 도착하는 탓에 첫날 숙소만 미리 예약해 둔 것이다. 




비엔티안의 밤거리는 조용했다.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픽업 차량으로 나온 현대차를 타고 공항에서 가장 큰 삼성 광고판을 보며 여기가 정말 라오스가 맞는 것인지 잠깐 생각했다. 두 시간을 거슬러 날아온 이곳은 과연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지. 괜스레 쫄린다. 생전 처음 만나는 라오스인이 우리를 제대로 데려다 줄 것인지도 걱정이다. 조심스럽게 아는 영어를 총동원해 물었다. 그는 수다스럽지 않았고 우리의 대화는 짧게 끝났다. 다행이다. 대화는 짧았지만, 안도감은 커졌다.

 

“하우 롱 더즈 잇 테이크 투 호텔?”

“어바웃 텐 미닛츠. 웨어 아 유 프럼?”

“코리아”

 

10분 남짓 달려 도착한 숙소는 홈페이지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속았구나 싶었다. 짐 풀고 씻고 애들 재우고 나니 맥주가 간절하다. 그래도 나갈 순 없다. 편의점 따위가 있어 보이지도 않고, 무엇보다 무섭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잠자리에 든다. 불을 끄니 낯선 공기가 나를 잠식할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여러모로 여긴 라오스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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