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나에게 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 (쇠소깍, 서귀포 기적의도서관)
유난히 일찍 일어난 아이들이 눈뜨자마자 텐트 안에서 뒹굴며 논다. 부스스 일어나 시계를 보니 6시 20분. 온종일 쏘다니며 노느라 초저녁이면 곯아떨어지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당연하겠지. 하지만 엄마, 아빠는 죽을 맛이다. 다음날 일정 짜랴, 맥주도 한잔하랴, 밤늦게까지 할 일이 많다. 그래서 아침이면 깨우는 애들과 더 자려는 엄마, 아빠 간에 한바탕 법석이 인다. 오늘도 한참을 뭉그적대다 겨우 일어나 애들 손에 이끌려 아침 댓바람부터 놀이터로 향한다.
오늘은 미뤄둔 쇠소깍 테우체험을 하는 날이다. 그저께는 배 시간을 놓쳐 못 탔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오후 2시 배를 예약했다. 그러고 남는 시간엔 근처 큰엉해안경승지로 가서 도시락을 먹었다. 바다를 집어 삼킬 듯이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언덕이란 뜻의 큰엉해안경승지는 남원포구에서 쇠소깍까지 이어지는 올래5코스에 있다.
다시 쇠소깍으로. 쇠소깍은 한라산 정상에서 발원해 돈내코를 거쳐 바다로 흐르는 효돈천의 하구를 가리킨다. 이곳에서 효돈천은 용천수와 바닷물을 만나 깊은 웅덩이를 형성한다. 쇠소깍의 '쇠'는 근처 효돈마을을, '소'는 움폭한 물웅덩이를 '깍'은 끝을 뜻한다. 효돈마을의 옛이름이 바로 소가 누워있단 뜻의 '쇠둔'이다.
쇠소깍
'떼배', '테위' 등으로 불리는 테우는 여러 개의 통나무를 엮어서 만든 뗏목배다. 현무암으로 형성되어 지반이 험한 제주도 연안에서 부력이 좋은 구상나무로 만든 테우는 미역이나 해초 등을 걷어 올리거나 자리돔 등을 그물로 잡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8~90년대까지만 해도 해안가 마을 집집이 테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관광 체험으로만 남아 있다.
테우는 무동력이다. 오직 물속에 드리운 밧줄을 잡아당기는 힘만으로 배가 이동한다. 태우와 밧줄 사이의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만들어 낸 힘과 움직이는 배의 '관성의 법칙'이 만들어낸 힘은 고작해야 물살의 마찰력을 겨우 이겨낼 정도다.
동호는 뚱하고
둥욱이는 좀 무서워하고
그래서 테우의 이동은 사실상 표류에 가깝다. 마치 바람에 실려 떠내려가듯 미끄러진다. 비록 속력은 느리지만, 편안하고 여유롭다. 마치 차를 타고 가면서는 볼 수 없었던 작은 골목길의 표정을 만나듯, 숲과 바다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러다 누군가 "앗! 물고기다."라고 외치자, 모두 물속으로 시선을 옮긴다. 은어 떼다. 워낙에 물이 맑아 은어가 많이 살기도 하지만, 가는 듯 마는 듯 흘러가는 테우가 은어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들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속도를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라고 한다. 인간은 속도가 있어 시간으로부터 해방되지만, 이는 결국 마약과 같은 망각과 부정일 뿐이다. 느림이야말로 진정 나에게, 그리고 자연에게 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흔들의자에 앉아 기분좋게
테우체험을 마치고 난 후에는 서귀포시로 돌아가 빨래방을 찾았다. 그동안 간단한 빨래는 야영장이나 목욕탕에서 직접 해왔는데 시간이 오래 지나다 보니 손빨래만으로는 한계가 컸다.
빨래방에서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에는 서귀포 기적의도서관에 들렀다. 제주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크고 작은, 그리고 이색적인 도서관을 볼 수 있다. 제주도 인구는 약 55만 명, 공공도서관은 22개다. 여기에 민간 도서관이 10여 개 더 있다. 도서관 1관 당 인구는 76,926명으로 전국 최소다. 반면 인천은 158,394명으로 꼴찌. 서울은 130,078명이다. 제주도는 여러모로 축복받은 곳이 틀림없다. 그러니 이리 좋을 수밖에. 아! 살고싶다, 제주도!
덕분에 아빠는 푹 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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