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유랑가족2012. 6. 21. 09:47

아침 햇살을 즐기며 과일을 먹고 있는 조동욱과 조동호

 

 

[5월 3일] 아직도 똥 냄새가 날 것 같아!


본격적인 제주유랑의 첫 번째 행선지는 이호테우해변이었다. 우리는 제일 먼저 바다가 보고 싶었고, 이호테우해변은 제주시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길에 동호가 곯아떨어졌고,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주차장에서 동호를 지켜야 했다. 바닷가로 나간 나와 동욱이는 곧장 모래 놀이에 돌입했다. 동욱이는 모래를 좋아한다. 작년 어느 강가 모래밭에서 뛰어놀다가 갑자기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며 모래를 먹어보던 동욱이다.

 

우리는 해변 한 편에 산처럼 쌓여 있는 모래더미에서 놀았다. 그런데 동욱이가 갑자기 신발을 벗으라고 한다. 모래와 일체감을 느끼며 더욱 놀이에 집중하려는 거다. 그런데 난 별로다. 약간 결벽증이 있는 나로서는 도무지 그 이력과 성분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모래더미에 내 몸을 그대로 맡길 수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신발을 벗고 뜨뜻미지근하게 노는데,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모래감촉과는 확연히 다른 정체불명의 미끄덩한 물질이 내 발에 닿은 것이다. 나는 개똥으로 추정되는 그 물질을 얼른 모래 속에 파묻고 화장실로 달렸다. “아빠, 똥 밟았어? 똥 어디 있어?” 동욱이는 똥 밟은 나의 기분에는 관심 없고 어떤 똥을 밟았는지 더 궁금한가 보다. 어쩔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나도 동욱이처럼 놀이에만 집중할 수밖에.

 

점심에는 도두동의 한 식당에서 전복물회와 전복죽을 먹었다. 꼬들꼬들한 전복이 각종 해산물과 양념에 어우러지면서도 그 고유의 맛을 잃지 않은 전북물회는 개운하고 맛깔스럽다. 푸르스름한 전북죽도 일품이다. 제주도 전북죽이 진하고 고소한 이유는 ‘게우’라는 내장 때문이다. 전복의 내장을 덩어리째 쥐고 있는 내장이 전복의 맛을 결정하는 핵심이다.

 

제주도에서 가장 유명한 해산물인 전복을 하나 따기 위해서는 10미터 이상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숨을 3분이나 참아야 하고, 그만큼 물의 부력을 이겨내며 사투를 벌여야 한다. 전복이 소중하고 맛있는 이유는 그것을 따기 위한 이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조선의 임금 정조는 전복을 먹지 않겠다며 공물에서 면제하라고 명했겠나. 인위적인 기술로 쉽고 편리하게 음식을 만들어 내는 사회이지만, 정직하고 힘든 노동으로 얻어진 음식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일용할 양식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점심 먹고 제주시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겼다. 커피도 마시고 사진도 찍고.

 

 

오후에는 한라수목원에 들렀다. 제주시 인근에 있는 한라수목원의 가장 큰 매력은 무료란 점이다. 사실 제주도에는 수많은 유료 관광지가 있지만, 이걸 꼭 돈 내고 가야 하나 싶은 곳도 많다. 하지만 한라수목원에서는 아무런 부담 없이 동네 산책하는 기분으로 여유로운 오후 한때를 즐길 수 있다. 돗자리 하나 펴고 동욱이는 그림을 그렸고 동호는 배시시 웃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하지만 여유로운 오후도 잠시일 뿐, 대형사고가 터졌다. 낮잠도 못 자고 한껏 들뜬 동욱이가 뛰어다니다 넘어진 것이다. 그것도 아주 크게. 무릎이 완전히 깨졌고 피가 흘렀다. 붉은 피를 본 동욱이는 겁에 질린 채 공원이 떠나가라 울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어르고 달랬지만, 소용없었다. 주위에 혹시 약국이 있을까 해서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런데 마침 길 건너에 한의원이 보였다. 한의원에서도 이런 치료를 해줄까 싶었지만, 동욱이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해서 한의원 문을 열었다. 작은 밴드 하나로도 마음으로는 큰 치료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곳 원장님께서 친절하게 소독도 해주시고 약도 발라 주셨다. 그것도 공짜로!

 

그런데 그 친절과 공짜가 문제였다. 너무 미안해서 아내 기침약이 있느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약 봉지 4개를 꺼내셨다. 아내가 기침이 안 떨어져 걱정이었는데 잘 됐다 싶어 얼른 건네받았다. 그런데 가격이 2만 원! 약국에서 샀으면 몇천 원이면 충분할 것을……. 비싼 가격에 속이 쓰렸지만, 동욱이도 치료받고 아내도 좋은 약 먹어 얼른 나을 수 있겠다며 애써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내는 그 약을 다 먹고도 낫지 않아 한참을 기침 때문에 고생했다.)

 

아직도 똥 냄새가 날 것 같은 발과 깨진 무릎, 콜록거리는 몸으로 다시 관음사 야영장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어둠이 깔린 후였다. 뜻하지 않은 시련으로 당혹스런 하루였지만, 그래도 좋다. 여긴 제주도니까.

 

Posted by alterna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