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유랑가족2013. 3. 11. 11:55

[517일] 언제나 응원하며 따뜻하게 안아줄게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 잠자리가 바뀌기도 했고, 아무도 없어 무섭기도 했다. 무엇보다 바람이 문제였다. 1,950미터 한라산 정상에서 출발한 바람이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면서 나무를 만나고 숲을 통과하며 엄청난 공명현상을 일으켰다. 100미터 앞, 50미터 앞, 10미터 앞.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바람은 모든 에너지를 소리로 바꿔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리며 다가와 우리 텐트를 거세게 강타했다. 마치 거대한 눈사태 같은 '바람사태'였다. 


날이 밝자,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고 평온해졌다. 하지만 불안으로 밤새 부대낀 나의 영혼은 지난밤이 제주도여행 중 최악이었음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여행이고 나발이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게다가 오늘은 이중섭미술관을 가기로 한 날이 아닌가. 바닷가로 나가 애들 풀어놓고 한숨 자도 모자랄 판에, 하필이면 미술관이라니. 따분한 애들은 온종일 엄마, 아빠에게만 매달릴 게 분명했다.


이중섭미술관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서귀포 시내 작은 언덕 위에 있다. 이중섭은 한국전쟁 당시 이곳으로 피난 와서 1년 가까이 살았다. 미술관 바로 아래에는 이중섭이 살았다는 거주지도 복원되어 있다. 1.4평 방 하나와 1.9평 부엌이 전부인 단칸방 초가집이다. 이 좁은 곳에서 어떻게 네 가족이 지낼 수 있었을지 놀랍다.


이중섭과 그의 가족이 지낸 방



그런데 이중섭에게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비록 가난으로 고단한 삶이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지내며 작품활동을 벌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중섭은 이듬해 가난 때문에 일본으로 돌아간 아내에게 이곳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그리운 제주도 풍경>이라는 그림을 보내기도 했다. 미술관에는 이중섭이 그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들이 여러 장 전시되어 있는데, 풋! 좀 귀엽다. 그럼에도 최근 위작 논란에 그의 아내와 아들이 개입된 걸 보면 참 씁쓸하다.


"나의 아스파라가스군(발가락 군)에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살뜰한 뽀뽀를 보내오. 한없이 부드럽고 나긋한 나만의 아스파라가스 군에게 따뜻한 아고리의 뽀뽀를 전해주구려." (이중섭은 아내의 발가락이 못생겼다며 그녀를 아스파라가스라고 불렀다.)



이중섭은 이곳에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그렸고, 나는 찍었다. 이중섭미술관 옥상에서 본 풍경.


이중섭은 부유한 가정환경 덕에 어려서부터 확실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14살 때 오산학교에 입학해 미국 예일대에서 미술공부를 했고 파리에서 활동했던 임용련을 만나 본격적인 미술교육을 받았고 20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을 한다. 그런 이중섭을 보면서 천부적인 재능도 중요하겠지만, 그 재능을 키울 수 있었던 교육적인 여건도 무시할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요새 미술적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물론 아빠 눈에^^;;, 동욱이는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게 될까. 획일화된 교육 속에서 오직 성적으로만 자신의 삶을 채우려 했던 아빠의 성장기는 어찌나 메마르고 앙상하던지. 그래서 우리 애들은 좀 달랐으면 좋겠다. 꼭 정해진 길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을 진짜 하고 싶은지 끝까지 찾아가면 좋겠다. 비록 더디고 힘들더라도 그게 진짜 자기에게 충만한 삶일 테니, 아빠도 그런 동욱이 동호를 언제나 응원하고 따뜻하게 안아줄 것이다.



야영장에 놀이터가 있다. 꽃밭놀이터. 애들은 신발도 벗은 채로 뛰어놀기 바쁘다.



저녁에는 생일파티를 열었다. 오늘은 동호랑 아빠 생일이다. 케이크에 불도 붙이고 미역국도 끓여 먹었다. 그리고 같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흥겨운 파티를 열었다. 비록 악기는 없었지만, 입과 손으로 흉내를 내며 즉흥연주를 펼치기도 했다. 아빠는 젬베, 엄마는 피아노, 동욱이는 우쿨렐레, 동호는 탬버린을 쳤다. 이렇게 노니까, 실제로도 온 가족이 악기 하나씩을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이 바람도 이뤄지겠지. 오늘 밤은 왠지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동호야 생일 축하해. 지난 1년동안 건강해서 고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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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유랑가족2013. 2. 20. 22:05

[5월 16일] 구럼비를 찾아서


아침부터 아이들이 게스트하우스가 떠나가라 뛰어다니며 논다. 잘 노는 건 좋은데 다른 손님들에게 눈치가 좀 보인다. 게스트하우스라 그런지 대개 손님들이 혼자 오거나 둘이 와서 조용히 지내기 때문이다. 가족여행으로는 게스트하우스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이틀 동안 잘 쉬다 가니 일단 그걸로 됐다.

 

삼각대 없이 타임머로 사진 찍기란 참 어렵다. 몇 번을 찍었건만 이모양이다.

 

오늘은 올레길 7코스 마지막 지점인 강정마을로 간다. 강정마을은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이슈가 된 곳이다. 진작에 한번은 왔어야 할 곳인데, 이렇게 여행객으로 찾게 되니 괜한 죄책감에 마음이 무겁다.

 

마을 입구에 이르면 '해군기지 결사반대' 현수막이 가장 먼저 눈에 띄고, 그제야 여기가 강정마을임을 실감할 수 있다. 불과 몇미터 전만 해도 그저 평온한 제주도일 뿐이었는데. 순식간에 이 세상과 격리된 다른 세상으로 공간이동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백발의 신부가 군홧발에 짓밟히고 천혜의 자연유산이 포크레인에 무너져 내려도 세상은 미동도 없다. 바다 괴물에게 제물로 바쳐진 안드로메다의 이야기가 아니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사거리 평화센터 옆으로 평화바다 중덕 가는 길을 안내하는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따라가 보니 강정마을 평화활동가들의 식사터인 삼거리식당과 망루가 나온다. 바닷가는 공사장 펜스로 막혔고. 그 뒤편에는 구럼비바위가 있겠지. 비록 지금은 아무도 없이 서명용지만 덩그러니 놓여 있지만, 이곳이야말로 구럼비를 지키기 위한 수많은 이들의 바람이 오롯이 남은 생명과 평화의 공간임이 분명하다.

 

동욱이가 뭘 봤을까.

 

 

엄마, 아빠가 이름을 쓰니 자기도 쓸 수 있다고 펜을 들었다. 조동욱이 유일하게 그릴 수 있는 글자.

 

다시 돌아 나와 강정포구로 가는 길, "저기 바다다."라고 외치던 아이들이 이내 "와, 저기 경찰이다."라고 외친다. 여기저기 경찰들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데, 경찰이 왜 있느냐는 동욱이의 물음엔 답조차 할 수 없다.

 

포구에 이르러 차에서 내린 우리는 방파제 위를 걷기 시작했다. 해지고 찢긴, 하지만 '해군기지 결사반대'라는 글귀만은 분명한 노란 깃발들이 펄럭인다. 강정 바다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십자가가 서 있고, 그 너머 강정바다는. 대형 크레인과 포크레인으로 쉴 새 없이 파헤쳐진다. 이제는 그 누구의 기도도 소용없어진 것은 아닌지. 바람이 세다.

 

해군기지 결사반대.

 

 

생명과 평화를 향한 십자가.

 

 

파다는 평화로운데.

 

다시 마을 입구 쪽으로 나와 해군기지사업단 정문으로 이동했다. 군가가 울려 퍼지고, 해군이 정문을 지키고 있다. 주민의 삶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군대의 땅으로 변했다. 강정마을 주민의 입장에서 이곳은 육지의 군대가 주둔한 점령지다.

 

그 앞으로 할망물다방이 열린다. 평화활동가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길바닥 다방으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과 따뜻한 차와 강정마을 소식을 나누는 곳이다. 거기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강정천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동욱이는 아빠 손잡고 앞서 가고, 동호는 엄마 손잡고 그 뒤를 따랐다. 얼마나 걸었을까, 산책길이 끝나고 바닷가에 이르렀다. 강정천을 흐르던 물도 작은 폭포가 되어 바다로 떨어진다. 그곳에도 어김없이 경찰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그 뒤로는 공사장. 더는 구럼비에 갈 수 없다.

 

서귀포 식수의 70%를 공급하는 강정천. 은어가 뛰노는 1급수다.

 

 

구럼비는 강정마을 해안가의 고유지명이다. 1.2킬로미터에 이르는 바위 지대인데, 놀랍게도 이게 한 덩어리다. 할망물은 그 틈에서 솟아오르는 용천수. 강정마을 주민은 이 할망물로 토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아이 낳지 못하는 사람은 아이를 갖고, 아픈 아이는 병이 나았다. 구럼비와 할망물은 강정마을 주민에게 대대로 전해진 생명의 터전이었다.

 

정부는 지난 1992년부터 군사력 강화와 국가안보를 핑계로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목을 매 왔다. 하지만 화순마을, 위미마을 그리고 강정마을에 이르기까지, 돌아오는 것은 주민의 거센 반발뿐이었다. 생명의 터전을 파괴하는 일을 누가 쉽게 동의하겠나. 게다가 제주 해군기지는 동북아 평화를 위협한다.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의 군사적 패권정책인 미사일방어체제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제주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대립은 더욱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여러모로 제주 해군기지 문제의 올바른 결론은 백지화뿐이다.

 

늦은 점심은 서귀포시에 있는 용이식당에서 해결했다. 역시 메뉴는 두루치기 하나뿐. 돼지고기에 파무침, 무생채, 그리고 콩나물까지 버무려져 매콤하게 입맛을 돋우웠다. 문제는 옷에 많이 튄다는 점, 반드시 앞치마를 둘러야 한다. 또 애들이 먹기 어려운 것도 문젠데, 지금까지 안 맵고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만 찾아다녔으니 한 번쯤은 엄마, 아빠 입맛에 맞게 먹어도 되지 않겠나 싶었다. 사실 나는 매운 음식을 잘 안 먹는 편이었는데, 아이들 때문에 그 맛이 원천봉쇄되니 오히려 매운 게 땅기는 순간이 왕왕 찾아왔다.

 

배불리 점심을 먹고 새로운 숙소인 돈내코야영장으로 향했다. 서귀포시 북쪽, 한라산 700미터 중턱에 자리 잡은 돈내코야영장은 멧돼지들이 물을 먹었던 입구란 뜻이다. 입장료는 무료. 역시나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우선 야영장을 휘 한 번 돌아보고 가장 명당자리라 생각되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는 다섯 밤을 지내게 된다. 새롭게 마련한 집에서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마음 무거운 오늘을 뒤로하고 내일을 기다려 본다.

 

돈내코 우리집. 배산임수가 잘 맞았나 모르겠네.

 

 

조동호, 밥 먹다 말고 뭐가 저렇게 좋은걸까.

Posted by alterna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