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속선의 속도감을 즐기고 있는 조동욱, 이때까진 좋았다.
[5월 2일] “감히 엷은 정성 올리오니 신이여, 강림하여 주옵소서.”
제주도에 갈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은 물론 비행기를 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뱃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달 동안이나 차를 빌릴 순 없었기 때문이다. 제주도 가는 배편은 인천, 목포, 부산 등 여러 곳에 있는데, 우리는 완도에서 출발했다. 제주항까지 1시간 40분에 돌파하는 쾌속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배는 저녁에 타서 다음 날 아침 도착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너무 비싸다. 마침 동욱이, 동호 외삼촌이 정읍에 살고 있어 어제 하룻밤 신세를 지고 오늘 아침 9시 완도에서 배를 탈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제주도에 내려간다는 말에 깜짝 놀라신 어머니는 우리가 배를 타고 내려간단 소리에 또 한 번 놀라셨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 추자도에 가신 적이 있었는데, 파도가 엄청나 멀미 때문에 크게 고생하셨다며 극구 말리셨다. 하지만 우리는 들은 척 만 척이었다. 그때가 언제라고, 지금처럼 배도 좋고 기술도 좋은데 까짓것 파도가 높아 봐야 얼마나 고생하겠나 싶었다.
처음 20분은 좋았다. 애들도 신이 나는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쾌속선의 속도감을 즐겼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육지가 사라지고 주위에 섬들도 물러난 망망대해에서 우리의 쾌속선은 그저 일엽편주에 지나지 않았다. 쾌속선의 엔진이 만들어내는 진동과 파도의 출렁거림은 귓속을 어지럽혀 반고리관에 고요히 차 있는 림프액을 마구 뒤흔들었다.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버린 아내가 제일 먼저 화장실로 가서 토악질했고 둘째 동호도 이내 엄마 가슴팍에 모든 것을 게워 냈다. 미처 소화되지 못한 채 자신의 갈 길을 마다한 음식물은 고약한 냄새를 발산했고 우리의 메스꺼움은 증폭되었다. 옆 사람들 눈치 보랴, 기진맥진한 애들 돌보랴, 토한 옷 빨래하랴,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던 중 드디어 제주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렀다.
내륙과 제주 사이를 흐르는 제주해협은 예로부터 물살이 세기로 유명하다. 멀리 적도에서 올라오는 난류와 서해 저층 냉수 등 서로 다른 온도의 여러 조류가 교차하면서 천혜의 어장을 형성해 가난한 민중에게 삶의 원천을 제공했지만, 거센 물살로 표류와 침몰이 잦아 거꾸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했다. 오죽했으면 아들을 낳으면 이 아이는 내 자식이 아니라 고기밥이라 했겠나. 자연스럽게 여자 낳기를 중요하게 여기게 됐고 여성은 남성 이상의 노동력으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운명을 갖게 되었다.
이 바다가 무서운 건 양반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시대 제주의 2대 관문 중 하나인 제주 화북 포구에는 ‘해신사’라는 사당이 있다. 1820년 제주 목사 한상묵이 세웠다고 하는데, 유교 근본주의자가 용왕신을 모시는 무속 사당을 세웠다는 게 흥미롭다. 일종의 ‘민중포섭책’이라고는 하지만, 인간 본연의 공포를 잠재우는 원초적 신앙심은 양반도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추사 김정희도 제주를 떠나면서 이곳에서 해신제를 지내며 자신의 무사귀환을 용왕님께 빌었다. 9년 가까운 유배생활을 마치고 이제 돌아가는데 인제 와서 바다에 빠져 죽게 된다면 이 얼마나 허망한 일이겠나. “탈 없이 잘 건너가기는 오직 바다신에 달려사옵기 감히 엷은 정성 올리오니 신이여, 강림하여 주옵소서.” 양반 아니라 양반 할아버지라도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면 한낮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용왕님의 은혜로 무사히 제주항에 도착한 우리는 관음사 야영장으로 향했다. 멀미에 고생해서 그런지, 비행기를 타고 떨어지는 맛이 없어 그런지 영 느낌이 나지 않는다. 가로수가 야자수란 사실만 여기가 제주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서부턴 우왕좌왕이다. 관음사 야영장에 도착하니 지대가 높아서인지 비가 내렸고 텐트 치길 포기하고 다시 제주시로 내려왔다. 점심을 사 먹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다시 야영장으로 갔는데, 아직도 비가 온다. 그냥 여관에서 하루 잘까 하는 유혹도 들었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그냥 텐트를 쳤다. 다행히 숲 속에는 나무가 많아 비가 많이 들이치지는 않았다.
텐트를 다 치고도 비가 계속 내렸다. 밥을 해 먹을 수 없어 근처 도서관에 갔다가 저녁도 사 먹기로 했다. 한라도서관에 갔는데 휴관이다. 정말 오늘은 일진이 꽝이구나. 다시 제주시내로 가서 기적의도서관을 찾았다. 잠든 동호를 안고 얼마나 졸았을까, 다리가 너무 저리다. 아, 무거운 동호!
저녁 먹고 다시 관음사 야영장. 어둠이 깔리고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솔직히 무섭다. 산짐승이 내려와 물어뜯으면 어쩌나, 나쁜 사람들이 찾아와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나, 싱숭생숭하다.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못한 제주에서의 첫 날밤, 나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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